러시아 화학무기 폐기 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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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화학무기 폐기 작업이 본격화됐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15일 보도했다. 소련이 보유했던 세계 최대 화학무기를 그대로 물려받은 러시아는 무기 관리와 폐기 등에서 가장 허술한 나라로 지목받아 왔다.

러시아는 1997년 화학무기금지협약 발효에 따라 전량 폐기를 약속했으나 지금까지 예산 부족 등으로 폐기작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협약에 따라 당초 2007년까지 폐기를 약속했으나 부진하자 2012년까지 파기시한을 연장했다. 러시아가 보유 중인 화학무기는 약 4만t으로 전 인류를 여러 차례 몰살시키고도 남을 분량이다.

FT는 "러시아 7대 화학무기 저장고 중 하나인 시추치예 지역을 방문해 폐기 공장 건설 작업이 진행 중인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시추치예 지역의 경우 예정대로 공사가 진척될 경우 2008년 폐기공장이 완공된다.

이 지역에 보관된 5400t 분량의 사린.VX(신경가스).소만 등 화학무기는 2012년까지 모두 폐기된다. 폐기공장이 완공될 경우 화학무기들은 특설 철로를 이용해 공장으로 옮겨진다. 화학무기는 독성을 제거한 다음 바이투만(역청)으로 봉해 매설된다. 러시아 측 관리자인 빅토르 콜스토프 장군은 "약속한 2012년까지 파기를 완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추치예 지역에 보관 중인 화학물질은 200만 개의 폭탄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이를 직접 인체에 투여할 경우 전 인류를 몰살시킬 수 있다.

특히 이 지역 화학무기는 테러 조직에 유출될 가능성이 커 국제사회를 긴장시켜 왔다. 이 지역의 경우 엄청난 분량의 화학물질이 와인통만 한 크기의 용기에 담겨 있어 유출되기 쉬운 데다, 저장 시설 자체도 쉽게 옮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테러 조직에 유출될 가능성 때문에 러시아 화학무기 폐기 작업에는 미국을 포함해 영국.캐나다.이탈리아.스위스 등 여러 선진국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시추치예 지역 화학무기 저장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미국이 사용한 돈만 해도 1000만 달러(110억원)에 이른다. 영국도 폐기공장 건설을 위한 전기.수도 설비 지원에 1000만 파운드(180억원)를 지원했다.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다른 6개 지역 가운데 세 곳은 조만간 폐기작업이 시작될 상황이며, 나머지 세 곳은 폐기공장 건설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FT는 "화학무기 저장고 때문에 시추치예 지역 주민들의 생활 기반이 모두 무너진 상태"라며 "주민들이 폐기공장 설립에 반대해 시위라도 하는 경우에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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