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자녀 교육비는 못 줄인다는 학부모님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같은 심정일지 모르겠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부모 다수가 사교육 투자에 대한 고집은 못 꺾겠다고 했으니까요. 교육비를 대느라 주부 생활 20년 만에 맞벌이에 나선 김모(48·경기도 용인)씨는 “못 먹어도 자식 교육비는 대줘야죠. 폐지라도 줍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본지의 ‘노후 위협하는 사교육비’ 시리즈 기사에는 “교육비만큼은 못 줄인다”는 댓글이 줄줄 달렸습니다. 학부모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선 “남들 다 하는 사교육 따라잡는 데만도 비용이 후덜덜한데 노후 대비가 웬 말이냐”는 글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면서도 전문가들의 조언을 다시금 꺼냅니다. 사교육비를 월 소득의 20% 이하로 줄이셔야 합니다. 줄인 돈으로 국민연금·퇴직연금에 개인연금까지 ‘노후 대비 3종 세트’부터 챙기세요. 그리고 자녀와 교육비와 노후 준비에 대해 소통하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사교육비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무엇보다 학부모님의 노후가 불투명합니다. 중소기업 은퇴 후 3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장모(61·서울 강서구)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그는 “대학까지 교육비로 1억원 넘게 들여 취업시킨 큰딸이 결혼 혼수비를 요구했을 땐 솔직히 섭섭했습니다. 하지만 ‘무능한 아빠’ 소릴 들을까 봐 말리기 어려웠죠”라고 털어놨습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은퇴자 51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54%가 “현재 돈으로 생활하기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이 연구소 윤원아 책임연구원은 “40대 지출 1순위를 차지하는 교육비부터 줄이지 않고선 해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녀에게 투자한 만큼 못 거둔다는 사실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교육비 투자→명문대 입학→대기업 취직’ 공식을 깨뜨리는 극심한 취업난 때문입니다. 지난해 4년제 대졸자 취업률은 55%입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20대 설문조사에서 “노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002년 67%에서 지난해 34%로 뚝 떨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자식 교육에 ‘올인’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육비를 쏟아부으면서 ‘윤택한 노후’까지 기대할 순 없을 겁니다. 더 씁쓸한 얘기를 전해드릴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 학생 대부분은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교육비에 올인하는 건 노후는 물론 자녀의 독립심마저 잃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노후는 여러분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30대 초반인 기자도 어제 은행에 들러 개인연금에 가입했습니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