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우중충 겨우살이 끝…샤방샤방 봄단장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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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거실 벽면에 직접 페인트를 칠한 사진작가 이완기(40)씨가 아들 지오(7)군과 함께 롤러와 붓을 들고 웃고 있다. [사진 라운드테이블 김민주 포토그래퍼]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옛사랑에게냐고? 아니다. 집주인에게다. “거실에 페인트 칠 좀 해도 될까요?” 집주인은 흔쾌히 “알아서 하라”고 한다. ‘이런 착한 집주인이 있다니!’라는 생각과 함께 전셋값을 올릴 때의 원망이 감사의 마음으로 바뀐다. 전셋집살이가 그렇다. 내 집이 아니니 큰 돈 들여 꾸미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대충 살자니 남의 집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럴 때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집을 꾸밀 수 있는 방법이 페인팅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내 집이 아니라는 이유에 발목이 잡힌다. 계약이 끝난 후 ‘원상태로 돌려놓으라’고 하면 도배를 해주고 나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요행히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셀프 페인팅에 도전해 봤다. 하지만 페인트칠을 하면서 차라리 집주인이 동의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러질 몇 번으로 벽면 하나를 뚝딱 칠하는 건 블로그에서 본 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은 고난의 행군, 시련의 연속이다. 소파 등의 가구를 옮기고 마스킹 테이프로 모서리 부분들을 감싸고 프라이머(밑칠용 페인트)를 바르고서도 2번의 페인트 칠을 더 해야한다. 프라미어를 바를 때까진 할 만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칠을 하다 보면 손목에 신경통이 오고 팔이 후들거린다. 양손잡이가 아닌 것이 야속할 만치 오른팔이 고되다.

하지만 페인트를 칠한 다음날 아침이면 정말이지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잠자는 사이 산타라도 와서 다시 칠을 해주고 간 듯하다. 칠해도 칠해도 얼룩덜룩하고 빈틈 많아보이던 벽면이 완벽하리만큼 균일한 색상으로 꽉 차 있다. 거기에 마스킹 테이프를 뜯어내 깨끗한 경계를 확인할 때의 기쁨이란! 할 때는 ‘이 짓을 다시 하나 봐라’ 싶었는데, 하고 나니 마음이 바뀐다. 방에도 칠하고 싶고, 주방에도 칠하고 싶어진다. 올리브 그린 빛이 감도는 베이지색 벽면 앞에 초콜릿색의 소파를 두고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마치 커피숍에 온 것 같다. 식물을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심듯 나를 더 나은 환경에 이식시킨 기분이다. 자신감과 성취감이 생겨난다.

공간의 힘이란 게 이다지도 무섭다. 공간을 정성들여 가꾸고 보듬으면 공간 역시 사람을 품고 위로한다. 반면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공간은 머무는 사람의 의욕을 좀먹고,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그 속에서는 절로 나태하고 침울해 진다. 방치해둔 공간의 품을 부드럽고 넉넉하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색을 입히는 일일 것이다. 색을 입힌다는 건, 단순한 덧칠을 의미하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곳을 고르게 펴주고, 찢어진 곳을 이어 붙이며, 묵은 먼지를 털어내어 좋은 바탕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공간을 잘 돌본다는 것은 자신을 잘 돌보는 일과 같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공간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고, 그 기쁨을 사람에게 되돌려준다. 사진작가인 이완기(40)씨는 셀프 페인팅에 도전한 후 “온 가족이 함께 집을 꾸미면서 생기는 가족간의 사랑과 결속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준다”고 말했다. 결혼 2년차인 박지혜(33)씨도 “남편과 함께 페인트를 칠한 후 만족감이 커져 집 꾸미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둘 사이에 공동의 관심사와 새로운 대화거리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외롭고 가난했던 시절, 시인 백석은 이렇게 썼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시인의 말처럼 벽면은 하나의 스크린이 되어 공간에 있는 이의 의식을 투영한다. 쓸쓸한 사람의 공간에는 쓸쓸한 것만이 오가고, 행복한 사람의 공간에는 행복한 것들이 노닌다. 지금, 당신이 바라보는 벽면에는 어떤 것들이 오고 가는가.

글=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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