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으로 화장한 때가 기억납니다. 유치원 때였죠. 좁은 무대를 가득 메운 부모님들께 그동안 배운 발레를 선보일 학예회. 어머니가 곱게 해준 화장. 입술에 바른 루즈가 지워질까 봐 입을 다물기 힘든 그때의 촌스러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애틋한지 모릅니다.
항시 처음이란 건 촌스럽지만 애잔하게 그리운 그 무엇인가봐요. 어릴 때 화장대에 놓인 화장품들 중에 살색 분가루. 촘촘한 간격으로 구멍 뚫린 작은 상자.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가 쏟아지며 나는 향긋한 분 냄새. 이 분 냄새가 좋았어요. 어머니의 냄새 중에 분명 이것이 있어 더 매혹적이었죠. 어머니의 주름도 화장을 하나 안 하나 저에겐 물결처럼, 나뭇결처럼 아름답지요. 화장을 하여 좀 더 화사한 어머니. 진곤색 투피스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으신 모습. 멀리 있어도 제 눈에 선합니다.
어느 편지 모음에서 본 글 하나를 골라 어머니께 띄웁니다. "오늘은 몇 번이나 웃으셨어요? 저는 너털 웃음 한 번. 조그만 웃음 다섯 번. 그러니까 내일도 건강합니다."
신현림 <시인.사진가>시인.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