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정보망 구멍 뚫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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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의 허술한 대북 정보 수집능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북한 요인들의 망명설이 잇따르고 있지만 우리 정부가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오보(誤報)로 판명난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인 길재경의 망명설을 계기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길재경이 미국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다 19일 본지가 吉의 묘비사진과 함께 "3년 전인 2000년 이미 사망했다"고 보도하자 뒤늦게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라종일(羅鍾一)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길재경은 사망한 게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중요 인물은 외부노출이 안되는 데다 2개의 이름을 쓰는 사람이 많아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통일부 역시 "어렴풋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언론의 망명설을 뒤집을 만큼 확신이 들지 않아 뭐라고 얘기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떠나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부는 망명설이 나돈 길재경 부부장의 사망사실과 경원하 박사의 망명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개탄했다.

국정원장을 지낸 민주당 천용택(千容宅)의원도 "북한 핵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원하 박사의 망명이 확인이 안될 정도로 북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국가안보상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지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수십년간 추적과 자료 존안이 필요한 북한 인적정보의 경우 베테랑급 전문요원이 필수적이지만 정보기관의 개혁파고에 휩쓸려 일찍 옷을 벗는 바람에 체계적인 작업이 이뤄지지 못한 게 원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정부 때 국정원 측의 정보유출 사건이 자주 발생함으로써 미국 CIA 등 해외 정보기관이 대북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게된 것도 원인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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