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 터치] 80년생 작가의 명랑한 상상, 문단을 낚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김.애.란.

1980년 인천생. 충남 서산여고 졸업한 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입학. 2002년 11월 대산대학문학상 받으며 등단. 예술학교 교수 황지우 시인의 다섯 과목을 이수함. 여태 발표한 작품 수 단편 9편. 키 162cm, 몸무게는 비밀. 주량은 맥주 1000cc 정도. 밤새 글 쓰고 오후 느지막이 기상. 쌍둥이 언니랑 서울서 함께 살고 부모는 서산에서 이발소와 식당을 각각 운영 중. 사랑 애(愛), 빛날 난(爛)을 써 애란.

기억하시라, 이름이 김애란이다. 며칠 전 결정된 올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다. 국내 문학상 통틀어 80년대 생 첫 수상자다. 아직 놀랄 게 남았다. 그는 여태 작품집 한 권 못 냈다. 작품집 없는 신인의 수상 기록은 문단에서 희귀하다.

올 봄 문예지 몇몇에 '김애란 작품론'이 실렸을 즈음 그의 이름은 소문처럼 떠돌았다. '김애란 읽었어?''아, 그 80년생!' 이런 식이었다. 71년산 작가 김종광이 "70년대 생 뜨기도 전에 80년대 생이 떠버리는구나"며 농 섞어 한탄한 것도, 원로 작가 김원일씨가 "김애란이, 걔 좋데"라고 추천한 것도 올 봄이었다.

그리고 여름. 골칫거리 80년생은 황순원문학상도 괴롭혔다. 선고위원 둘이 김애란을 소리 높여 추천했다. 하나 그는 자격 미달이었다. '작품집(또는 장편) 한 권 이상 발표'란 규정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선고위원은 우겼다. "규정을 바꾸자"고도 했다. 결국엔 규정을 지키기로 했다.

그의 화법은 새롭다. 박민규처럼 수시로 말장난을 걸지도, 천명관처럼 반(反)서사 전략을 고집하지 않지만 새롭다. 그의 주인공은 대체로 외롭고 가난하다. 예전 문학이라면 가난과 싸워 이기거나 계급적 각성이라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인공은 현실을 수긍한다. 체념한 듯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대신 상상을 한다. 상상하지만 해괴하지는 않다. 상상이란 현실 부정의 심리인데 그의 상상은 현실과 얽혀 나아간다. 무엇보다 그의 상상은 명랑하다.

수상작 '달려라 아비'가 꼭 그렇다. 사생아인 주인공 '나'가 아버지를 상상하는 얘기가 소설의 얼개다. 나는 아버지가 내내 달리고 있다고 상상한다. 그래야 납득할 수 있다. 다급하거나 쫓기는 처지라야 만삭의 아내를 버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소설 속 아비와 자식 사이엔 화해도 저항도 없다. 상상 속에서 달리는 아비를 위해 선글라스를 끼우는 새로운 상상만 더할 뿐이다. 잊지 마시라. 이름이 김애란이다. 올 문단이 거둔 최고 수확 중 하나다. 첫 창작집은 다음주 창비에서 나온다.

손민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