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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싸이가 아니다, 노래하는 시인 '사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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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이` 페이스북

싸이가 아니다. 사이다. 그는 노래하는 시인이다. 한때는 거리의 시인이었다.
사이는 친구들과 2000년대 중반 시위 현장에서 기타를 메고 멜로디언·트라이앵글·카주·봉고를 연주했다. '아콤다'라는 밴드였다. 해묵은 민중가요 대신 웬만한 인디밴드보다 재기발랄한 곡을 불렀다. 이를 테면 이런 가사다.

'밥 먹고 총총총 노동사무소로 나는 갑니다. 실업수당 받으면 수영장이나 다녀야지. 아무래도 이러다보니 영국 사람이라도 된 것 같구나. 생각나네 내 동생 얼굴 고용보험 참 좋다'
-사이 '얼굴'(클릭)

10여 년 전 홍대 라이브클럽 '빵'에서 사이를 처음 만났다. 덥수룩한 털보 수염 때문에 몇 살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흔 살 넘은 웬 도인이 음악을 하는가 싶었다(당시 그는 30대 초반). 사이의 노래 한 마디, 한 마디가 시를 읊는 것처럼 힘있게 또박또박 잘 들렸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사람. 그래서 노래 부르는 사람. 한국 포크의 미래라고 느꼈다. 사이는 단지 " 그냥 아는 사람이라서 더 좋게 들리는 거"라고 했다. 돈 많이 벌어 다니는 학교를 사버리겠다는 내 농담에 사이는 거기 청소부로 취직시켜 달라며 웃었다. "글이 가장 저질인 것 같아요. 또 가짜도 많고요." 사이가 전에 잡지사에서 일했다는 걸 나중에 알고는 이 말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년 후 사이는 결혼과 동시에 귀농했다. "가능한 인간이 없는 곳에 살고 싶어" 경남 산청을 택했고 세탁기·냉장고·휴대전화도 없이 밤에는 촛불 켜고 살았다. 농약은커녕 비료 한 줌 안 쓰고 밭농사를 지었다. 첫 앨범 '아방가르드'도 거기서 직접 녹음해 구운 CD를, 블로그를 통해 주문 받아 팔았다. 한 곡, 한 곡마다 그때의 생활이 묻어 나온다.

사이 `아방가르드` 앨범 커버

첫 곡 '아방가르드개론 제1장'(클릭)에서 그는 "텔레비전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없어도 좋아...아이가 태어나도 학교따윈 안 보낼 거야"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곧 "자유와 고독을 노래하는 방랑자여, 그대는 석유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나? 그대는 진정 쓸모 있는 남편인지" 자문한다. 이처럼 솔직하게 자기를 돌아보는 곡이 우리 대중음악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산청에서 그는 "사람은 혼자 살 수도 없고, 혼자 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자기 표현대로 '타락한 생태근본주의자'가 돼 경남 하동으로 다시 충북 괴산으로 이사한다.

2집 '유기농펑크포크' 앨범 발표 후 신문 방송에서 사이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친한 인디밴드들과 함께 매년 여름 괴산 페스티벌을 연다. 지금도 그의 노래가 한국 대중음악의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존재인 것만은 확실하다.

사이가 세 번째 앨범을 준비 중이다. "이번 앨범을 홈레코딩으로 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전의 사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졌어요. 그런 새로움을 위해서 저는 편곡과 프로듀싱을 처음으로 남한테 맡기고, 좋은 세션 연주자를 쓰고,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 뒤, 믹싱과 마스터링을 거친 앨범을 만들려고 해요"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3월까지 소셜펀딩(클릭)을 하고 있다.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는 팬의 입장에서 쓴 대중음악 이야기입니다.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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