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DJ 말 한마디에 목매는 한심한 정당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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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0.26 재선거 이후 정치권에서 새판짜기 모색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 정치 철학이나 정책 노선의 동질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특정 지역에서 표를 끌어 모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문제다. 이건 지역 대결 구도로 회귀하겠다는 것이다. 겨우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지역 대결의 정치, 지역감정의 망령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여러분이 나의 정치적 계승자" "전통적 지지표를 복원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대변인은 이 말을 가장 먼저 소개했고, 당의장은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사무총장은 "민주세력, 평화통일세력이 모두 손을 잡고 나가라는 당부"라고 해석했다. 마치 부모로부터 처음 적자로 인정받은 것같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도 꼴불견이긴 마찬가지였다. "DJ가 정치를 같이 했던 후배 정치인들에게 흔히 하는 얘기"라고 평가절하하면서 "DJ의 정치노선을 계승한 당은 민주당"이라고 반박했다. DJ가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 하는 문제에 목을 매는 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현재 모습이다.

재선거 참패 후 환골탈태하겠다는 여당이 기껏 궁리한 게 DJ를 이용해 호남표를 끌어들이는 것인가. 이건 스스로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꼴이다. '지역주의 정치 타파'를 내세우며 민주당과 결별하고 새 당을 만든 게 누구였던가. 그래놓고 창당 2년도 안 돼 지지도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민주당과 합치겠다는 것은 명분도 없고 염치도 없는 행태다.

국민중심당(가칭)이 창당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도 자민련의 흡수통합 약속이었다. 이건 충청도당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열린우리당은 '도로 호남당'을, 국민중심당은 '도로 자민련'을 만들겠다니 유치한 발상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당들은 망국적 지역감정을 조장해왔다. 열린우리당이나 국민중심당이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다. 지역주의 정치로 되돌아가려는 꼼수는 당장 그만둬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을 모독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