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쟁송제도의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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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당한 행정처분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두개의 기본법이 대폭적인 손질을 거쳐 면모를 일신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로 큰 의미를 갖는다.
정부와 국민이 가장 직접적이고 빈번한 접점을 이루는 행정서비스를 둘러싸고 그동안 있어온 열거할 수 없는 폐단과 불합리, 부당한 권리침해는 행정에 대한 국민의 광범한 불신과 민원의 가장 큰 뿌리가 되어왔다.
정부주도의 개발정책으로 행정조직과 힘의 가속적인 비대화가 이루어져 왔고 사회구조의 다양화로 인해 행정서비스의 수요도 그에 못지않게 다기화 됨에 따라 관민간의 접점은 계속 확대되어온 셈이다.
이같은 행정서비스의 확대는 그에 상응하는 행정의 근대화나 국민의 권리신장과 편의 확대라는 행정의 기본목표와 보조를 같이 하지 못해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그 단적인 예로 부당행정에 대한 국민권리 구제의 기본법인 소원법과 생정소송법이 지난 32년간 방치되어온 점을 들 수 있다. 이 두 기본법의 장기간 방치는 변명의 여지없이 국민의 권리구제 보다 행정편의를 우선해온 행정부의 자세와 연관되어 있다.
실로 32년 만에 정부가 이 두 기본법의 골격을 국민권리에 주안을 두고 대폭 개정한 시안을 내놓은 것은 참으로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법무부의 새 시안을 보면 그동안 부당한 행정처분으로 입은 국민의 피해를 구제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도사려 있는 장애 요인들을 광범하게 제거한 노력이 단연 눈에 돋보인다.
전근대적인 소원법을 행정심판법으로 바꾸어 의무이행심판제를 신설하고 위법 부당조치가 아닌 행정의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도 가능케 했으며 심판 및 소송청구 기간을 연장하는 한편 심판절차를 사법화한 것도 모두 국민권리를 전제한 진일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현행법상 반드시 전단계인 행정심판을 거치도록한 절차도 없애 직접소송의 길을 넓힌것이나 재결, 또는 판결의 효력을 강화, 원래의 행정처분이 취소된 경우 지체없이 새로운 처분을 내리도록 규정한 것도 권리신장과 피해축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오랜 기간동안 관계 전문가들과 숙의한 끝에 내놓은 이번 시안은 이처럼 개혁적인 면모가 도처에 약여하다. 그러나 이같은 전진적인 입법자세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그것이 완벽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도 눈에 띤다.
우선 무엇보다도 이 개정안의 가장 큰 골격을 이루는 의무이행심판제가 1단계인 행정심판법에는 규정돼 있으나 본심인 항소법에는 이를 채택하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행정청의 부작위 내지 의무태만 행위에 따른 권리침해는 이를 확인만 하는데 그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이행소송을 인정하는 것이 논리상의 귀결이며 입법정신과 부합될 것이다.
또 비록 전보다는 직접 본안 소송의 길이 넓어졌다 해도 여전히 전심인 행정심판을 거치도록한 심판전치주의의 존속은 행정편의주의 잔재로 볼 수 있어 이 부분도 더 손질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개혁과 진일보에도 불구하고 행정쟁소제의 근대화는 이 두 기본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의 60여개에 이르는 각종의 개별 또는 특별법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며 행정위주의 잔재들이 남아있음을 상기해야한다. 정부가 오랜만에 개혁을 시도한 이상 모든 연관 법령이나예규들도 이 기본법정신에 준하여 개편돼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빠른 시일안에 이 모든 법개정 절차가 이루어져 행정서비스의 획기적인 근대화가 앞당겨 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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