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농악·북청사자놀음에 들썩인 카자흐 … 이런 게 핏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 12일 알마티 국립 고려극장에서 열린 ‘2015 중앙아시아 재외동포 무형유산 강습사업 발표회’에서 함경남도 민요 ‘돈돌날이’를 선보인 고려인 청소년들.

“한국에서는 공연 시작하기 전에 ‘얼씨구’ 하면 ‘좋다’ 추어줍니다. 우리도 해볼까요?”

 사회를 맡은 양진환(47·임실필봉농악 전수교육조교)씨가 관객 흥을 돋운다. 2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서툴게나마 ‘얼씨구’ ‘좋다’를 외치니 왁자지껄 분위기가 뜨거워진다. 지난 12일 오후 3시 카자흐스탄 알마티 파파니나 거리의 국립 고려극장 대극장. ‘2015 중앙아시아 재외동포 무형유산 강습사업 발표회’ 현장은 우리 소리와 춤으로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국립무형유산원이 2013년부터 진행해온 교육 프로그램은 올해 중요무형문화재인 임실필봉농악과 북청사자놀음 두 종목으로 집중됐다.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농악, 카자흐스탄 10만 고려인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북쪽 지역민을 위한 북청사자놀음을 신(新) 수도인 아스타나와 구(舊) 수도인 알마티에서 3주에 걸쳐 강습했다.

 창립 83년을 자랑하는 국립 고려극장 단원들은 능숙한 몸짓으로 임실필봉농악을 선보였다. “궁따궁, 딱꿍 딱궁” 신명나는 장구 소리, 며칠 만에 익힌 상모놀이가 펼쳐지자 무대가 후끈 달아오른다.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공부하는 청소년 12명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함경남도 부녀자들이 놀던 ‘돈돌날이’를 수줍은 자태로 부르고 췄다. 우리 땅이 우리 손으로 돌아온다는 뜻을 지녀 일제강점기에 저항 민요로 이름났던 ‘돈돌날이’의 속뜻을 소개한 사회자가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이 열흘 만에 이 정도 했습니다. 얼마나 장한지요” 칭찬하자 객석에서는 “하라쇼(러시아어로 좋다는 뜻)”를 외치는 박수가 터졌다.

 이날 공연은 국영방송인 ‘카날 카자흐스탄’과 ‘하바르 방송국’이 취재할 만큼 지역 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구소련공화국 중 하나였다가 1991년 독립한 카자흐스탄은 140여 개 다민족 국가로 여러 민족들의 통일과 조화를 중시하는 ‘앙상볼리아’ 정책을 펴고 있다. 아홉 번째로 큰 소수민족 집단인 10만 고려인은 37년 강제이주시절부터 근면성과 교육열로 인정받아왔다.

 사자탈을 뒤집어쓴 고려극장 젊은 단원들의 역동적인 춤사위가 인상적인 ‘북청사자놀음’이 끝나자 전 출연진이 무대로 나와 관객들과 하나가 됐다. 다리가 불편한 데도 먼 걸음을 한 이 알렉세이(90) 옹은 어떻게 보셨느냐는 질문에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었다. 낡고 옹색한 건물을 지켜온 50여 명 단원들은 한민족의 자부심을 문화 정신으로 표현해온 고려극장의 역사가 한국에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 류보비(63) 고려 극장장은 “극장이 변두리 주택가에 위치해 많은 고려 사람들이 찾아오기 어려운 입지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올해 안에 알마티 시내 중심가에 새 건물을 내주기로 약속했지만 음향 설비와 무대 장치 등에 대한 예산은 극장 측 부담이라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이번 무형유산 협력 사업에 실무자로 나섰던 전병순 알파라비 카자흐 국립대 한국학 교수는 “국악을 한 번 익힌 학생들은 평생 그 감성과 혼을 잊지 못한다”며 지속적인 교육과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민족학교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자흐 국립대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진 나스차(20)는 “한글을 배우는 것보다 더 즉각적으로 흡수한 농악의 여운이 앞으로 한국학 공부를 하는 데 큰힘이 될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마티(카자흐스탄)=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