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장터' 단골 참가 한국화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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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지난달 29일 서울 뚝섬 광장. 올해 마지막 '아름다운 장터'가 열렸다. 아름다운가게가 매달 한두 차례 개최하는 아름다운장터는 기관.단체.개인이 물건을 가지고 나와 싼값에 팔아 수익금을 기부하는 행사다.

이날 날씨는 낮에도 섭씨 10도를 조금 넘을 정도로 쌀쌀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3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반소매 차림으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자, 허리 25인치짜리 치마! 맞는 아주머니께는 4000원에 드려요!" 제약사 한국화이자의 정재형(37) 차장이 동료 10여 명과 함께 직원들의 기부 물품을 모아서 아름다운장터에 나온 것이다.

"정 차장님, 회사 그만두고 리어카 하나 장만하세요."

'장사를 무척 잘한다'는 칭찬 섞인 동료의 농담에 장터에 나온 손님들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직원들은 풍선을 불어 어린이들에게 나눠줬다. 어떤 직원은 화이자 사회공헌 활동의 상징인 흰 곰 캐릭터를 쓰고 나와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점심은 김밥으로 때우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사를 해 직원들이 기부한 500여점을 거의 다 팔았다. 직원들은 이날 약 40만원을 벌어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했다.

화이자가 아름다운장터에 참가한 것은 2004년 5월부터 이날까지 모두 10번. 아름다운가게에 따르면 기업.기관.단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참가했다. 이로 인해 화이자는 아름다운장터의 올해 '베스트 참가자'에 선정됐다. 개인 중에는 베스트 참가자로 뽑힌 사람이 있으나 기업.단체 중에는 화이자가 유일하다.

화이자가 아름다운장터에 처음 참가한 것은 사회공헌 활동을 담당하는 홍보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기부나 판매에는 원하는 사람만 참여토록 했다. 이 활동이 인기를 끌어 장터에 나갈 때마다 10여 명이 판매요원으로 나섰고, 기부 물품도 쇄도했다. 100여 점을 기부하고 세 번 장터에 나간 의학부 하정은(38.여) 차장은 "힘들긴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에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하 차장은 "남편이 화장품을 안 쓰는 것 같아 장터에 내놨다가 나중에 남편이 찾는 바람에 당황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남편 허리띠를 가져왔다가 남편에게 야단맞고 다음날 머쓱해 하며 되받아간 직원도 있었단다. 직원이 이사 갈 때는 친한 동료가 달려가 처분할 물건을 장터용으로 가져오는 일은 이젠 화이자의 문화로 정착했다.

화이자는 지금까지 550여 직원에게서 옷.신발.책.장난감 등 3500여 점을 기부받아 판매 수익금 170여만원을 아름다운가게에 전했다. 판매에 열중해 장터에 나온 동료가 잠시 벗어놓은 신발까지 팔아버린 적도 있다. 신발 주인은 결국 발에 맞지도 않는, 기부품으로 나왔으나 그날 팔리지 않은 신발을 질질 끌고 귀가했다. 이 회사 홍보부 손명희 차장은 "자녀를 데리고 나와 3000~5000원을 준 뒤 '꼭 필요한 물건만 사 보라'며 현장 경제교육을 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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