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 인준’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문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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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오른쪽)와 박지원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호텔에서 2·8 전당대회 이후 처음으로 만나 30여 분간 회동했다. 문 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 의원이 “당을 살리는 데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 집권을 위해 평당원으로서 제 몫을 다해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김상선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여론조사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표는 1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여야의 공동 여론조사를 해보자”며 “우리는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안의 경우 국민의 여론이 답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품격 있는 총리를 원한다”고 했다. 특히 “본회의가 16일로 연기된 건 이 후보자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라며 “이 후보자는 국민과 대통령에게 누를 덜 끼치는 길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 인준안을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를 16일로 연기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지 하루 만에 나온 문 대표의 여론조사 제안에 당 내에서조차 갑작스럽다는 반응이다.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우윤근 원내대표는 “문 대표가 여론조사 방안을 제안할지 나도 몰랐다”며 “지도부의 사전 검토도 없었고, 제안이 나온 뒤 비공개 회의에서야 그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졌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문 대표는 여론조사 방식을 제안하기 전 다른 지도부에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메시지팀이 만든 모두발언 안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문 대표의 핵심 측근은 발언 배경을 묻자 “상식적으로 의회의 기능을 무시하고 여론조사로 임명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문 대표의 의도는 민심의 추이가 ‘임명 불가’로 기울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안의 근거와 아이디어는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제공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당 싱크탱크다.

 이 후보자 인준안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입장은 ‘인준 불가’다. 그러나 16일 본회의에서 표 대결을 할 경우 의석 수로는 이길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고 새 지도부가 들어서자마자 본회의를 보이콧하는 건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이 더 악화돼 이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게 최선이라는 게 문 대표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 대표의 여론조사 발언은 주말 여론전을 위한 ‘긴급처방’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실제로 민주정책연구원의 이 후보자에 대한 적합도 조사에서 “부적격”이라는 응답은 52.9%(9일)에서 청문회를 거치며 53.8%(11일)→55.0%(12일)로 많아졌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부적합” 의견이 41%로 “적합하다”는 응답(29%)을 웃돌았다. 부정적인 여론이 1월 말(20%)에 비해 2배로 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의 발언이 몰고 온 후폭풍은 거셌다. 당 내에선 “괜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총리 후보자 인준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여론조사에 맡기자는 건 리더십에 대한 방기”라고 지적했다. 전당대회 후 이날 처음 문 대표와 만난 박지원 의원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면 대체 국회의 역할이 뭔지 의구심이 든다. 지도자에게는 결정과 책임이 있을 뿐이다”고 문 대표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당 대변인실이 바빴다. 오전 브리핑에서 “인준은 청와대의 지시와 집권여당의 강행처리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던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오후엔 “‘여론조사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발언은 국민의 여론에 승복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문 대표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합의한 지 하루 만에 말 바꾸기다”라고 비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문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16일에 본회의를 하기로 한 것밖에 합의한 게 없다. 그런데 무슨 말 바꾸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들과의 문답 과정에서 “그 양반이 (나를) 웃기는 자로 (만드느냐)”라며 “그런 행태의 정치가 정말 싫다”는 말도 했다.

글=강태화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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