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고이즈미 초강경 내각의 노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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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더욱이 한국과 중국이 후계구도도 염두에 두면서 상황 타개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던 시점에서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동을 취했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측면마저 엿보였다. 10월 28일 자민당의 개헌안 발표, 29일 주일미군 재편과 미.일동맹 강화계획 '중간보고'에 이어 31일의 개각 발표가 잇따르면서 '우경화 일본'이 본격화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일본 국내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개각의 주된 화두는 "고이즈미 개혁의 계속"이다. 외교에 대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개각 인선의 기준이 '개혁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로운 내각의 면면을 보면 야스쿠니 참배론자가 거의 대부분이며, 국립추도시설 추진파들은 거의 예외없이 제외됐다. 야스쿠니 참배가 인선의 숨은 기준이라는 추측이 나올 정도였다. '구조개혁의 지속적 추진'뿐만 아니라 야스쿠니 참배도 고이즈미 총리가 후계자에게 전승할 자신의 유산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외교는 과연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 전략을 결여한 채로 머리 없는 동물처럼 좌충우돌하는 것인가? 아니면 본격적으로 우경화 군사대국화의 길을 질주할 것인가? 아직 알기 어렵고 불확실한 부분도 많지만 현재 시점에서 눈에 띄는 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야스쿠니 문제를 계기로 '역사문제의 외교카드화'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는 강하게 보인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4년간 참배를 계속해 기정사실화하고, 후계 총리도 이를 뒤집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동시에 개헌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인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 주일미군 재편과 미.일동맹 강화에도 미국과의 마찰이 최근 두드러진다. 아직 '오른쪽'으로 질주할 태세는 갖춰져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일본의 향방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

둘째, 초강경 내각이 오히려 북.일 교섭 추진을 염두에 둔 포석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는 외상 지명을 받은 아소 다로(生太郞) 자신의 '우려'에 대해, "매파라고 해서 (외교적으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중.일 국교정상화도 후쿠다 정권 때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일 국교 정상화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대파의 선봉인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관방장관에 임명한 것은 북.일 교섭의 공동 책임체제일 뿐더러 반대여론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실제로 북.일 간에도 교섭 재개와 진전을 시사하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감지된다. 호소다 전 관방장관이 "요코타 메구미 유골에 타인의 DNA가 섞여 있었다"고 발언한 것도 주목을 끌었다. "섞여 있었다"는 것은 일본 정부의 종전 입장과는 다른 유연한 자세다. 북한도 3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일 접촉에서 조사 계속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화답했다. 북.일 교섭은 의외로 빨리 진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이즈미 초강경 내각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한국의 대응도 한층 복잡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확고한 원칙과 비판을 통한 '억제'와 더불어, 관여(engagement)를 통한 일본의 실질적 정책 변화의 추구가 어느 때보다도 요청된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대일(對日) 외교는 오히려 강화해야 할 때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