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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인사혁신처장, 벌써 공무원집단에 물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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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공무원연금 개혁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11일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소속 공무원노조 대표들과 만나기 전 “국민대타협기구에서 야당 안을 내달라고 설득해 보고, 야당 안이 넘어오면 같이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노조 대표들에게 “국민대타협기구에서 충분히 논의하되 여야가 합의한 일정(4월 처리)을 존중해달라”고 당부했다. 유 대표는 전날 박근혜 대통령과 당·청 회동에서 “2, 4월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최대한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한 공무원연금 개혁에 당·청이 고삐를 죄기로 했다니 반길 일이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움직임이 있다. 바로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다. 개혁을 돕지는 못할망정 걸림돌로 등장했다. 이 처장은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회의에서 정부 안을 불쑥 꺼냈다가 항의를 받자 정부 안이 아니라 기초안이라고 발뺌했다. 회의 당일 문건 공개를 거부하더니 다음날 문제의 기초안을 언론에 공개했다.

 기초안의 내용은 더 문제다. 새누리당 안에서 후퇴해 공무원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새누리당은 40년 근무자의 노후연금 비율을 생애평균소득의 50%(현재 76%, 33년 기준은 62.7%)로 깎기로 했으나 인사혁신처는 60%로 올렸다. 대신 퇴직금을 지금처럼 민간의 6.5~39%만 지급하기로 했다. 총액 차이는 없지만 저성장·수명연장 등을 감안하면 연금을 더 받는 게 공무원에게 유리하다. 게다가 신규 공무원은 국민연금과 같게 함으로써 기존 공무원과 격차가 더 벌어지게 돼 장기적으로 두 연금의 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할 게 뻔하다.

 연금 수령을 위한 최소가입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완화한 것도 문제다. 20년 미만 재직자에게 일시금 대신 연금을 지급하면 ‘재정난 심화-국민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국민연금처럼 10년으로 낮추려면 혜택 축소가 선행돼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합쳐 20년을 채우면 공무원연금을 받는 현행 제도만으로 충분하다. 기존 공무원의 연금을 2~4% 깎아 재정안정기금을 조성하는 안을 백지화하고 2016~2020년 연금을 동결한다는 것도 단기 효과만 내는 게 아닌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인사혁신처의 전신인 행정안전부는 연금개혁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해왔다. 개혁 시늉만 내는 바람에 충당부채가 484조원에 이르고, 국민 한 사람이 945만원의 빚을 졌다. 이번에는 재정추계도 안 한 채 여당보다 못한 안을 꺼내 분란만 일으켰다. 이번에 제대로 손보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게 된다. 그런데도 또 ‘셀프 개혁’으로 망치려는가. 민간기업 출신인 이 처장을 발탁한 목적은 공직사회를 뛰어넘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공무원과 노조 눈치를 보는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