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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기업 귀족 노조 일자리 세습에 청춘이 좌절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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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기업 귀족 노조의 일자리 세습이 심각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와 노동연구원이 단체 협약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직원 300명 이상인 대기업 600여 곳 중 180여 곳(29%)에서 노사가 단체 협약을 통해 직원 가족에게 채용 특혜를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자의 자녀·배우자를 우선 채용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많이 썼다. 실태 조사에서 드러난 사례를 보면 ‘현대판 음서제’와 다름없었다. 유형도 다양했다.

 한 타이어 업체는 정년 퇴직자 직계가족에 대해 우선 채용 조항을 단협에 못 박았다. 업무와 상관없이 생긴 부상이나 질병으로 퇴직한 근로자의 가족을 우선 채용하기로 약속한 회사도 꽤 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고용 세습 조항은 노조가 먼저 요구하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단협에 포함된다고 한다. 특혜를 요구하는 노조도 문제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회사 역시 공범이나 다름없다.

 높은 연봉과 갖가지 복지 혜택을 누리는 대기업 귀족 노조가 일자리까지 대물림하겠다는 것은 대기업 노조원을 부모로 두지 못한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명백한 반칙이다. 한쪽에서는 20~30대 청년들이 ‘취업 절벽’에 막혀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버티며 살아가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부모 잘 만나 높은 연봉과 안락한 복지를 쉽게 누린다면 이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 청년들이 최고의 스펙은 ‘호적등본’이라며 좌절하고 자조에 빠지는 것 아닌가.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9.2%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웬만한 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100대 1을 넘는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다. 고용 세습을 방지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개선을 권고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법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이런 일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 우선 현재 협의가 진행 중인 노사정위원회에서 민간 기업의 고용 세습을 금지할 방안을 찾되, 필요하다면 기존의 단체 협약에 집어넣은 고용 세습 조항을 원천 무효화하는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