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시리아 결의안' 채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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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31일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 배후로 지목된 시리아 정부의 수사협조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의안은 암살 관련자들을 체포.수감하고 이들에 대한 출국금지 및 자산동결 조치를 취해줄 것을 시리아 정부에 요구했다. 일단 시리아는 "불합리한 결의안"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시리아가 결의안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암살사건에 시리아 최고위층이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이 결의안은 시리아 집권층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 결의안 채택=결의안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제안으로 5개 상임이사국 외무장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채택됐다. 그만큼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결의안은 당초 예상됐던 것보다는 약한 내용으로 통과됐다. 결의안을 추진한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포함하려 했던 내용 가운데 "시리아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경제제재를 할 수 있다"는 핵심이 빠졌다. 시리아의 오랜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자체가 무산될 것을 우려해 경제제재 조항을 막판에 포기했다. 대신 "시리아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필요한 사항을 추가 검토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경제제재 가능성만 남겼다.

결의안 통과 직후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시리아가 테러지원, 주변국 내정간섭, 중동지역 안정위협 등을 저질러 왔음을 국제사회가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라이스 장관은 또 "이제 시리아 정부는 근본적인 행동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 시리아의 반발=안보리에 참석했던 파루크 알샤라 시리아 외무장관은 "안보리가 범하지도 않은 범죄로 시리아를 비난했다"며 "불합리한 결의안"이라고 비난했다. 중동권은 대체로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해 제재위협을 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범아랍 일간 알하야는 1일 "이번 결의안은 이미 복잡한 중동 정세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1일 "제재조치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결의안 채택은 시리아에 큰 정치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서방세계가 주도하는 유엔 조사단이 시리아를 잇따라 방문하면서 시리아 정국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존 볼턴 유엔 미국대사는 지난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아시프 샤우카트(군 정보책임자)가 알아사드 대통령의 매형으로 권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유엔본부=남정호.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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