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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문학도서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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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준봉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지난주 문학담당 기자들은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뉴스를 접했다. 출판사 민음사가 1977년부터 운영해 온 문학상인 ‘오늘의 작가상’을 확 바꾸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먼저 희망. 출판사는 꼭 민음사 소설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 책에도 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의 작가상은 가능성 있는 신작을 발굴해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이를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그게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다. 앞으로는 기왕에 출간된 타 출판사 책이라도 작품만 괜찮다면 수상작으로 뽑아 상금 격인 창작지원금 2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기세상으로는 39회째를 맞는 올해 수상작은 타 출판사 소설책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희망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절망이다. 팔순의 고령인 민음사 박맹호 회장은 직접 기자간담회 자리에 나타났다. 자칫 ‘남 좋은 일 시켜주기’ 십상인 작가상 개편 이유를 묻자 “침체된 한국문학을 되살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출판사가 손해 봐도 좋으니 화제가 되는 소설책 한 권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뜻이다. 그만큼 요즘 한국문학이 고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 오늘의 작가상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다. 소설가 한수산씨의 1회 수상작인 장편소설 『부초』는 30만 부가 팔렸다. 한씨는 그 인세 수입으로 아파트 두 채를 사고, 일본으로 건너가 5년간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 회장의 자서전(『박맹호 자서전 책』)에 나오는 얘기다.

 지난달 중순에는 우울하기만 한 뉴스가 날아들었다. 정부의 우수 문학도서(세종도서) 보급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다. 사업은 2005년 ‘문학회생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시·소설·에세이 등 5개 문학장르에 걸쳐 한 해 수십 종씩 우수도서를 선정해 한 종당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정부가 구입한다. 작가와 출판사에는 인세·판매수익이, 소외계층에는 질 좋은 문학책이 돌아간다.

 문제는 올해 도서를 정할 때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순수문학 작품’인지를 평가 잣대의 하나로 삼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당장 한국작가회의가 “민주 국가의 기본권인 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작품 안에 녹아 있기 마련인 작가의 세계관이 곧 이념이고 사상인데, 특정 이념을 배제하겠다는 얘기는 결국 상상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알려진 것처럼 정부의 갑작스러운 이념 잣대 도입은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산문집(『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이 부른 파장과 관계 있어 보인다. 2013년 우수도서로 선정된 신씨 책이 종북 시비에 휘말리자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라는 작가회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

 사실이라면 너무 나갔다. 다시 박 회장의 자서전으로 돌아가자. 85년 신군부가 입맛에 맞지 않는 출판인들을 잡아들이자 민음사·문학과지성사·창비 등 17개 출판사 대표가 선언문을 발표했다. 출판물은 사상의 공개시장 원리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선 안 된다.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