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앞세운 검은 돈 … 뉴욕 부동산 시장으로 우르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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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검은 돈’이 미국 뉴욕의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껍데기뿐인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워 뉴욕의 부동산을 은밀하게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로퍼티샤크에 따르면 뉴욕의 최고급 주택시장에 매년 흘러들는 자금은 약 80억 달러(약 8조8000억원)에 이른다. 10년 전에 비해 3배로 늘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뉴욕에서 500만 달러(약 55억원) 이상으로 거래된 최고급 아파트의 소유주 54%가 페이퍼컴퍼니라고 최근 보도했다. 이는 39%였던 2008년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뉴욕 중심의 센트럴파크와 가까운 ‘원57’의 소유자 77%, 주거시설 ‘더 플라자’ 소유자의 69%도 페이퍼컴퍼니였다. 이들 페이퍼컴퍼니의 뒤에는 변호사와 회계사, 중개업자 등이 연결돼 있다. 대부분의 거래는 신탁회사 등을 앞세워 현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실소유주를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페이퍼컴퍼니가 기승을 부리는 대표적인 곳은 맨해튼의 타임워너센터다. 이 건물 아파트 74B호의 소유주는 ‘25CC74B’라는 이름의 회사다. 2010년 1565만 달러(약 170억원)에 아파트를 사들였다. NYT의 취재 결과 실제 주인은 비탈리 말킨 전 러시아 상원의원이었다. 범죄조직에 연루된 혐의로 캐나다 입국이 금지된 인물이다. 지난해 가을,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가 같은 건물의 아파트를 2140만 달러(약 265억원)에 매입했다. 전주는 1년 전 부패 혐의로 체포된 그리스 기업인 드미트리오스 콘토미나스였다.

 NYT가 타임워너센터의 최근 10년간 소유주 기록을 살펴본 결과 등록된 페이퍼컴퍼니가 200곳이 넘었다. 개인 명의 소유자 중 16명은 자신 혹은 회사의 부정 행위로 체포되거나 조사를 받은 인물이었다. 타임워너센터에 있는 고급 아파트 관리자였던 루디 타우셔는 “빌딩관리업체는 매입 자금의 원천이 어디인지 관심도 없고, 실제 자금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뉴욕의 고급 부동산이 돈세탁 창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세 회피와 세금 은닉을 위해 뉴욕으로 몰린 자금에 합법적인 투자처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또한 맨해튼에 부동산을 소유한 외국인 억만장자 중 금융사기 등 각종 불법 행위에 연루된 인물도 상당수에 달하기 때문이다. NYT는 “맨해튼 부동산 시장이 출처를 알 수 없는 해외 자금의 세탁 창구로 활용될 수 있는데도 미국 정부는 눈을 감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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