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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고급스럽게 환경까지 생각하면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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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호 08면

메종 오브제 파리 2015 ‘올해의 디자이너’ 넨도(Nendo)의 설립자 사토 오키가 선보인 ‘쇼콜라텍스튀르’ 라운지. 초콜릿의 질감을 테마로 한 관람객 휴식 장소다.

유럽 최대의 가구·실내장식 박람회로 꼽히는 메종 오브제 파리(Maison et Objet Paris)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다닌다. 처음에는 ‘공항에 막 도착한 외국 바이어가 짐도 안 풀고 그대로 온 것인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르 빌팽트 전시 센터의 8개 홀 중 하나라도 돌고 나면 진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홀을 걸어가며 연달아 나오는 흥미로운 전시부스에서 카탈로그를 하나씩 챙기다 보면 바퀴 달린 가방 없이는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유럽 최대 실내장식박람회 메종 오브제 파리를 가다

메종 오브제 파리는 매년 1월과 9월 노르 빌팽트 센터의 8개 홀 전체에 걸쳐 열린다. 8개 홀의 총 면적은 24만6000 제곱m. 3000개에 달하는 부스가 차지한 면적만 해도 13만 제곱m에 달한다. 서울 코엑스 A, B홀을 합친 넓이가 1만8000 제곱m 정도니, 그 거대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만큼 내용도 풍부하다. 제 1홀은 이국적 스타일의 가구와 소품, 2홀은 텍스타일 제품, 3홀은 식기와 부엌용품, 4홀과 제 5홀은 가구와 홈 데코레이션, 6홀은 문구장난감 등 각종 선물용 소품에 특화돼 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7홀과 8홀에 이르면 눈이 즐거워진다. 명품 가구실내장식 업체가 몰려있는 7홀에는 상설 고급 부티크와 다를 바 없는 크고 화려한 쇼룸이 늘어서 있다. 혁신적 디자인이 집중된 8홀에서는 디자이너의 재치와 유머를 즐기느라 까딱하면 여기서 하루를 다 보내게 된다.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열린 1월 쇼의 현장을 다녀왔다.

1 캐나다 업체 몰로(Molo) 부스. 벽부터 조명등까지 모두 접었다 폈다 늘렸다 할 수 있는 종이 짜임이다. 2 종이 스툴을 아코디언 접듯 접어보이는 몰로의 직원. 3 일본 업체 부나코(Bunaco)의 나무 조명등. 나무를 1mm 두께로 잘라 테이프로 만든 것을 돌돌 말아 만들었다. 4 프랑스 업체 에디션 디자인(Edition Design)의 ‘태양’ 샹들리에. 폴리아미드와 라이크라 재질로 되어있다. 5 부나코 부스 전경
이탈리아 업체 구프람(Gufram)의 고전인 ‘보카’ 소파와 ‘프라토네’ 안락의자.

아코디언 같은 종이벽 눈길
캐나다 디자인 스튜디오 몰로(Molo)의 전시장은 8홀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5m 높이에 아름다운 줄무늬가 있는 황갈색 벽을 두 면에 두르고 있는데,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종이벽이기 때문이다. 하얀 구름이 둥실 떠있는 듯 공중에 매달려 있는 조명등도 종이다. 파티션과 긴 의자가 결합된 ‘벤치월(benchwall)’은 개방된 일직선 형태로 펼칠 수도 있고, 양끝이 맞물리도록 둥글게 설치해 폐쇄된 원형 방으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종이가구 ‘soft’ 시리즈의 핵심은 공간을 가변적으로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재료는 100%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죠.” 몰로의 공동 디자이너·창업자인 스테파니 포사이스의 설명이다.

재료와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일본 업체 부나코(Bunaco)도 비슷한 디자인 철학을 구현한다. 역시 8홀에 있는 부나코 부스에는 간결하고 아름다운 곡선의 나무 조명등이 빛을 온화하게 퍼뜨린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면 조명등은 물론 바닥에 놓인 둥근 의자의 표면에도 일정한 결이 있다. 마치 물레 위에서 돌아가며 만들어지고 있는 도자기를 닮았다. “이 결이 나오는 것은 나무를 깎아 만드는 게 아니라 1mm 두께의 테이프처럼 얇게 잘라내 그것을 돌돌 말아 만들기 때문이죠.” 전시장에 나와있던 마츠모토 유카의 설명이 이어졌다. “홋카이도산 너도밤나무를 사용하는데, 그냥 사용하면 나무가 물러서 내구성이 약하지만, 이렇게 만들면 내구성도 강해지면서 가볍습니다. 목재 낭비를 줄이게 되니 남벌을 막아 환경도 보호하는 거죠.”

이 행사에 11년째 참가하고 있는 한국 여행용품액세서리 디자인 업체 알리프(Alife)의 엄세영 대표는 “친환경은 예전부터 화두였지만, 점점 일반화되어 가는 게 확실한 트렌드가 됐다”고 말한다. 런던에 기반을 두고 한국의 중소 디자인 업체와 유럽 기업을 연결해주는 에이전시 노태그(Notag)를 운영하는 최웅 대표는 여기에 하나를 추가했다. “펀(fun), 즉 재미를 추구하는 게 중요한 트렌드 같아요.”

그의 말대로 유희적 속성을 가진 제품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1960년대 말부터 파격적이고 유머러스한 제품으로 포스트모던 가구 디자인을 이끌어온 이탈리아의 구프람(Gufram)은 관람객에게 자신들의 고전인 1970년 작 ‘보카(Bocca)’와 1972년 작 ‘프라토네(Pratone)’에 앉아보라고 권한다. 보카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 따온 새빨간 입술 소파고 프라토네는 거대한 인조잔디에 파묻히도록 만들어진 안락의자다. 신작인 ‘바운스(Bounce)’ 의자는 유쾌한 파스텔 캔디 컬러를 띠고 있다.

영국 디자인 브랜드 이너모스트(Innermost)의 전시장도 웃음이 나오는 디자인들로 가득하다. 특히 보송보송한 하얀 양이 목마로 변신한 듯한 흔들의자 ‘하이-호(Hi-ho)’ 앞은 사진 찍는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6 미국 업체 피넬(Finell)의 실리콘 그릇들. 7 영국 업체 이너모스트(Innermost)의 유머러스한 의자 하이-호. 8 넨도(Nendo)가 디자인한 초콜릿. “맛은 같지만, 형태와 질감이 달라 먹어보면 굉장히 다르다”고 디자이너 사토 오키는 말한다. 9 넨도의 쇼콜라텍스튀르 라운지.

올해의 디자이너 넨도의 사토 오키와 초콜릿 라운지
디자인에 위트를 담는 것은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일본 디자인 업체 넨도(Nendo)의 젊은 창립자 사토 오키(38)의 특징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의 미니멀한 디자인 전통에 북유럽식 유머와 따스함을 결합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행사에는 ‘쇼콜라텍스튀르’ 라운지를 선보였다. 이름 그대로 초콜릿의 질감을 테마로 한 관람객 휴식 장소다. 크림색 공간에 갖가지 모양의 초콜릿색 소파와 스툴과 테이블이 놓여있다. 그 옆으로 라운지의 경계를 형성하며 각기 다른 높이의 수많은 가느다란 기둥이 서있다. 기둥 색깔은 흰색과 초콜릿색이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어서 다크초콜릿 반 화이트초콜릿 반의 물결이 라운지를 둘러싼 느낌이다. 한쪽 코너에서는 넨도가 디자인한 진짜 초콜릿도 팔고 있다.

“초콜릿을 먼저 디자인했어요. 맛은 같지만 형태와 질감이 다른 아홉 종류인데 먹어보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가구는 지난 몇 년간 넨도가 디자인해 이탈리아 카펠리니, 모로소 등의 가구업체가 제작한 것 중 초콜릿 색 제품만 모아봤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2000여 개의 기둥으로 둘러쌌지요. 앉아있으면 녹아내리는 초콜릿 물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부스도 인기
메종 오브제 파리에서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존재감은 아직 크지 않다. 중국은 단 한 개 브랜드만 참여했는데, 대신 중국의 기자와 관람객 수는 눈에 띄게 많아 리빙 디자인에 대한 중국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국내 7개 업체가 참가했다. 이중 진흥원의 부스만 공예를 다루는 제 5홀에 있고 다른 한국 업체들은 모두 문구·완구·기념품을 다루는 6홀에 있다. 한국 업체 중 이 행사에 가장 오래 참가했으며 유럽에서 디자인 한류를 이끄는 알리프의 엄 대표에게 이유를 물었다. “소품 디자인이 아닌 비유럽 국가 업체가 참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부피가 큰 가구를 원거리 수송하는 게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죠. 일본의 경우 브랜드 인지도를 꽤 높여놓아 전시 참여 효과가 비용을 상쇄하고 있어요.”

이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었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은 나름의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가위나 풀 없이 오로지 종이를 끼우는 방식으로 레고처럼 조립하는 상품을 내놓은 페이퍼로빈(Paperobean)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디자이너 출신인 김강국 대표가 2011년 세운 이 회사는 행사 참가가 세 번째다. “지난번 참가 덕분에 개선문 조립 모형을 파리 개선문 기프트숍에 납품하게 됐습니다.” 강민영 부장이 말했다. “올해의 신작은 타이타닉입니다. 이곳은 다른 홀보다 사진 찍는 것에 더 민감해 하지만 저희는 마음껏 사진을 찍게 하고 있어요. 워낙 정교해서 복제가 힘들거든요.”

2008년부터 참가하고 있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부스는 인기가 많아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다. 총 9명의 한국 작가가 참여한 이 부스에서 관람객들은 청화백자를 묘사한 장식 종이를 덧씌워 생수병은 멋진 꽃병으로 변화시킨 제품과 놋쇠로 만든 작은 향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서윤경 책임연구원이 설명했다.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참가 초기만 해도 한국 현대 공예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었는데 지금은 훨씬 좋아진 느낌입니다. 갤러리와 장식미술관 등에서 전시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요.”

b>10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부스. 11 한국 여행용품 디자인 업체 알리프(Alife)의 여행가방 태그. 12 한국 업체 페이퍼로빈(Paperobean)의 부스. 페이퍼로빈의 강민영 부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노태그의 최웅 대표(맨 오른쪽)가 바이어들에게 설명 중이다. 13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부스에 전시된 안대훈의 금속공예. 14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부스에 전시된 미룸보의 종이 소품. 생수병에 덧씌워 그럴 듯한 장식화병으로 변신시키는 제품이다. 15 페이퍼로빈의 개선문 모형. 칼이나 풀을 쓰지 않고 종이 조각을 뜯어내 서로 끼워서 정교하게 조립하도록 되어 있다.

샹젤리제 부티크를 그대로 옮겨온 듯
7홀은 5일간의 장터를 위한 임시 부스라기보다 샹젤리제 거리의 부티크를 옮겨온 느낌이다. 미소니 쇼룸의 경우 특유의 알록달록한 패턴이 들어간 휘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벽에는 미소니의 테이블웨어가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이루며 붙어있어 거대한 설치미술 같다. “7홀에는 유서 깊고 유명한 업체들이 집중돼 있고 주요 타깃은 고급 호텔과 부티크의 인테리어 기획자들”이라는 게 메종 오브제 홍보 담당 샤를 카미카의 설명이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크리스털 업체 랄리크(Lalique)의 전시장도 눈길을 끌었다. 유명 동시대 미술가인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와 협업해 만든 ‘이터널(Eternal)’ 시리즈 크리스털 장식패널을 최초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허스트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인 나비가 세 가지 형태로 12가지 색깔의 크리스털 패널에 형상화된 작품이다. 랄리크는 미술사 책에도 등장하는 아르누보 보석유리 공예의 대가 르네 랄리크가 1921년에 세운 회사다. 이런 전통이 오늘날 유럽 디자인의 밑바탕이자 자양분인 것이다.

16 프랑스 페인트업체 메르카디에(Mercadier)는 색채 목록을 의자로 구현했다. 17 유서 깊은 프랑스 크리스털 업체 랄리크(Lalique)가 유명 미술가 데미언 허스트와 협업해 만든 ‘이터널(Eternal)’ 크리스털 패널. 18 이탈리아 패션 명가 미소니(Missoni)의 예술작품 같은 테이블웨어 전시 모습. 19 영국 페인트업체 리틀 그린(Little Greene)의 부스. 20 메종 오브제 아시아 2015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네리와 후(Neri & Hu)의 부스.
메종 오브제 아시아 2015 ‘라이징 탤런트’로 선정된 한국 디자이너 박원민의 ‘헤이즈(Haze)’ 시리즈 테이블

유럽 넘어 아시아와 미국으로
그러나 메종 오브제는 전통에 안주하지 않는다. 8홀에는 북유럽과 북미, 일본 업체와 디자인 스튜디오의 부스가 특히 많았다. 프랑스와 남서유럽을 넘어 전세계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가구인테리어 디자인을 네트워킹하려는 야심이 반영된 결과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메종 오브제는 지난해부터 메종 오브제 아시아 에디션(3월 싱가포르 개최)을 시작했고 올해는 아메리카 에디션(5월 미국 마이애미 비치)을 신설했다.

각각의 에디션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와 ‘라이징 탤런트’를 선발하는데, 아시아 에디션의 경우 올해의 디자이너는 상하이에 기반을 둔 건축 디자이너 팀 네리와 후(Neri & Hu)가 선정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네리와 후의 린던 네리는 “한국 커미션도 맡고 있는데, 강남에 세워질 아모레-퍼시픽의 플래그쉽 스토어 빌딩”이라고 귀띔했다.

또 6명의 젊은 디자이너 ‘라이징 탤런트’ 중에는 한국의 박원민이 있다. 82년 생으로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공부하고 주로 그곳에서 활동하는 그는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디자인, 또 다른 언어’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무지개 같은 화려한 색상이 반투명 레진에 스며들어 고요하고 단정한 형태로 나타나는 그의 가구 디자인에 대해 주최측은 “추상미술을 연상시키며 미술작품과 실용적 제품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프랑스의 풍부한 공예 전통을 자양분으로 한 메종 오브제는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디자인 파워까지 끌어 모으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디자인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할까.

파리 글·사진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ongang.co.kr, 사진 메종 오브제 파리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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