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군 참모총장 KAL기격추사건 회견의 허구|만행 정당화…뜯어맞춘 각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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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련 국방제1차관겸 소련군 참모총장「니콜라이·오가르코프」의 기자회견 내용은 소련전투기가 미사일을 발사해 KAL기를 격추시켰다는 확실한 표현이외에는 KAL기격추 사건 이후 소련이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해온 주장을 종합, 되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발표 가운데 새로운 내용은 ▲KAL기가 공중 폭발했으나 정확한 추락지점은 알수 없고 ▲격추명령은 소련 극동군구(군구)사령관 「고보로프」장군이며 ▲KAL기를 추격하기위해 캄차카반도에서 4대, 사할린 섬에서 6대의 전투기가 동원됐으며 ▲KAL기에 미사일을 발사, 격추시킨 것은 SU-15전투기로 사전에 1백20여발의 경고발사를 했다고 주장하는 점 등이다.
소련이 군사최고위직에 있는 「오가르코프」를 내세워 서방기자들까지 포함시킨 이례적인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그들이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하나의 반증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가르코프」가 밝힌 사건전모는 별표에서 비교되는 바와 같이 미일측의 주장과는 상반되거나 거리가 너무 멀어 이번 사건에 대한 양측의 견해차이는 조금도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다시한번 드러냈다.
더구나 「오가르코프」의 발표 가운데는 미일측이 녹음한 소련전투기 조종사들과 지상관제소 사이의 교신내용에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은 것도 들어있어 모순으로 지적됐다.
이는 소련측이 KAL기격추과정에서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학살을 하지 않았으며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주기위해 고육지책으로 격추드라머를 각색한 것으로 풀이된다. 『2차례에 걸쳐 1백20여발의 예광탄을 경고 발사했다』느니 『국제긴급 주파수를 이용한 교신노력을 했으나 응답이 없었다』또는 『항법등(ANO)이 켜져있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은 모두 교신내용을 녹음한 테이프 속에 들어있지 않은것이거나 교신내용과는 정반대의 것들이다.
특히 각색의 냄새가 짙은 것은 소련전투기 조종사가 KAL항법등과 스트로보(점멸등)를 보았다는 녹음에 대한 「오가르코프」의 해명이다. 그는 소련전투기의 이같은 교신내용이 KAL기가 아닌 동료전투기의 항법등을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의 관측통들은 소련측의 이 같은 해명은 보잉747점보기인 KAL기를 보잉707기를 개조한RC-135정찰기로, 오인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설사 747기를 707기로 오인할 수는 있다하더라도 KAL기와 동료전투기의 항법등까지 구별하지 못하는 전투기 조종사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모순점외에도 「오가르코프」의 해명은 미일측의 주장과 곳곳에서 서로 상충된다. 「오가르크프」는 KAL기가 첩보기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RC-135미 정찰기와 같은 항로에서 10분동안이나 랑데부비행을 했고 소련의 주요방공기지상공을 날았으며 항법등을 끈채 신호와 경고사격까지도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RC-135정찰기가 KAL기처럼 소련영공에 들어간적도 없고 두비행기의 거리가 1백21㎞까지 근접된 적도 없으며 KAL기 피격당시 RC-135기는 이미 1시간 전에 알래스카 기지에 있었다고 반박했었다. 미국 분석가들은 특히 경고사격 부분에 대해 KAL기를 격추한 SU-15 소련전투기에는 기관포가 장치되어 있지 않아 소련주장처럼 예광탄등을 발사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련측의 교신시도노력에 대해서도 미국측은 KAL기에 장치한 무선은 VHF(초단파)와 UHF(극초단파)의 2종이나 소련전투기는 UHF만 있을 뿐 국제긴급 주파수로 사용할 수 있는 VHF는 없어 항공기간의 교신은 불가능하며 소련의 지상관제소에서도국제긴급주파수(1백21.5메가헤르츠)를 사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만약 소련이 세계공통의 주파수를 사용했었다면 미국이나 일본의 레이다망이 이를 포착하지 못했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KAL기의 항로이탈을 소련측은 『의도적인 영공침범』으로 못박고 있지만 미일측에서는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블랙박스등의 자료를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정적으로 말할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KAL기 조종사가 일본항공관제소와의
마지막 교신에서 알려온 비행위치로 미루어 KAL기가 정기항로에서 1백마일이상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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