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한 미국 역사학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자국의 역사에 대한 타국 교과서의 기술에 불만이 있을 때 문제를 제기하는 건 어느 나라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 나라는 역사의 책임에 대한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최근 발표된 미국 역사학자 19명의 성명은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이 점에서 미달(未達)됨을 나타낸다.

 지난해 가을 미국의 대형 교육출판사 맥그로힐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정 요구에 대해 “저자의 작품·연구 및 기술 내용을 지지하며 어떠한 수정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문제 삼은 내용은 “일본군은 14~20세의 여성 약 20만 명을 위안소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강제로 징용했다” “도망치려다 살해된 위안부도 있었다” 등이다.

 미국 역사학자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성 착취의 야만적 시스템하에서 고통을 겪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과 다른 국가의 역사교과서 기술을 억압하려는 최근의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본 정부 문헌을 통한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일본 주오(中央)대 교수의 신중한 연구와 생존자들의 증언은 국가가 후원한 성노예 시스템의 본질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 역사학자들이 논쟁조차 거부한 것은 실질적인 ‘성노예 시스템’에 대해 포괄적 강제성조차 부인하려 드는 아베 정권의 반(反)인도적 행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명에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드물지 않게 가해 당사국인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과 이와 연결된 폭력적 행태를 규탄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일본과 피해국인 한국·중국을 넘어 제3국 지식인들이 이 대열에 동참한 건 새로운 사태 발전이다. 동기는 미국 교과서지만 본질은 일본의 역사 왜곡이다. 점점 더 많은 세계 지식인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한·일 간 분쟁이 아니라 인권 같은 인류문명적 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