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의 소통 사각지대 간단한 ‘픽토그램’으로 없앤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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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목격한 문제를 공동체가 공감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자주 이런 물음을 떠올린다. 개인이 목격하거나 경험한 일이 개인의 차원을 넘는 사회의 문제일 경우 특히 그렇다. 우리가 지역보다 사회, 사회보다 국가 이야기에 더 자주 열을 올리는 이유도 공동체적 해결에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단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행동주의 예술가 잰 코언 크루즈(Jan Cohen-Cruz)는 예술적 요소를 사회적 상황에 적용한 ‘지역 실천(local act)’ 개념으로 유명하다. 공동체적 표현의 예술을 강조한 것이다. 마을을 무대로 연극 공연이 펼쳐졌던 패전트리(pageantry)가 그 예다.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시각적 예술행위로서 기호의 활용, 상징의 공유만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을 고양하고 새로운 질서 창출에 얼마든지 이바지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안된 커뮤니케이션 수단 ‘픽토그램(pictogram)’이다. 픽토그램은 공공영역에서 지켜야 할 시민 간 약속을 기호화한 심벌이다.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일상에서 요구되는 공적 책임을 표준화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의 영역이라고 속단할 수도 있지만 지역 공동체에서만큼은 예외다. 그래서 이를 일상 속 휴머니즘의 실천이라고도 한다.

픽토그램은 자신의 의사를 기호화할 수 있는 소시민에 의해 만들어진다. 문제 해결의지를 표현함으로써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일상 속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게 된다. 기존 사이니지(signage)에만 의존해 행동하지 않으며 추가적인 공적 소통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는 자신들이 동의하고 승인해 줄 수 있는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픽토그램, 기능적 상징(functional symbol)을 지속적으로 창조해 낸다. 특히 공동체 이익과 안전을 위한 기호의 조합, 상징을 만들어 보고 공유하는 것을 지자체가 함께 고민해 준다면 문제는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지자체가 지역 문제 해결과 공동체 재건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느냐에 따라 시민들은 일상에서 의외의 픽토그램을 접하게 되고 개인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일본의 마을 공동체 전문가 야마자키 료(山崎亮)는 사람을 보며 생활을 디자인하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진정한 관계의 복원을 이끈다는 것이다. 혼자 시작하지만 함께 만들어 간다는 원칙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시민이 느끼는 문제에서 촉발된 창의적 픽토그램은 때로 공동체 디자인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 내 소통의 사각지대를 메워 줄 수 있다. 역으로 수많은 픽토그램 속에서 방심하는 사이 실제 수용자 관점을 상실한 소통의 현장을 재검토하게 해 준다. 대중화 시대에 소단위 지자체도 이상적인 구호와 추상적인 브랜드에만 집착했다. 당연히 소소한 문제는 사라지고 지역민과의 연결고리도 소멸했다. ‘작은 외침 LOUD’는 이런 사각지대에 간단한 픽토그램을 투입해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게 뭐야”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거라도 해 보자”며 말문을 열고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중앙SUNDAY 콜라보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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