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4곳 전패] '강정구 파문'에 보수층이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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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몇 가지다. 기본적으로 선거구마다 열린우리당의 2~3배에 달하는 당 지지율 덕을 톡톡히 봤다. 동시에 전통적으로 재.보선은 후보 간 개인기 대결이 아니라 정권의 중간평가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24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전국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이 32%인데 반해 열린우리당은 12%에 그쳤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당 지지도 격차가 이쯤 되면 한나라당 후보가 패배하는 게 이변일 정도"라고 설명한다. 한나라당이 '실정(失政) 논란'의 반사이익을 짭짤하게 챙긴 셈이다.

무엇보다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강정구 교수 파문'이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보수화 경향을 야기해 한나라당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조사에서 자신의 이념 성향이 진보라고 답한 사람이 2003년 2월엔 34%였지만 이번엔 21%로 크게 떨어졌다. 반면 중도성향은 35%에서 40%로 늘어났다.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자신들의 아성인 울산 북구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패배한 것은 유권자의 보수화 경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지, 아니면 멀지않은 시점에 반전의 계기를 맞을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내년 상반기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지방선거에서 또 한번 열린우리당이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주목할 점은 영호남 지역대립 구도가 점차 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민정당 시절부터 한 번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던 부천 원미갑 지역에서 처음으로 승리했다.

부천 지역 당 관계자는 "예전같으면 이 지역 호남 출신 유권자들 가운데 한나라당 지지자는 10% 미만이었는데 이번엔 25% 이상이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 같은 호남 유권자의 의식변화가 승리의 큰 요인이 됐다"고 전했다.

대구에선 비록 한나라당이 이기긴 했지만 열린우리당의 선전이 돋보였다. 이번 재선거 지역 네 곳 중 열린우리당이 지난해 총선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얻은 곳은 대구 한 곳뿐이다. 4.30 재.보선 때 영천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턱밑까지 쫓아온 데 이어 이번 대구 동을에서도 한나라당은 선거운동 막판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공공기관 유치를 내세운 여당의 '물량공세'와 "그동안 한나라당이 해준 게 뭐냐"는 유권자의 냉소가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결국 영천 선거 때처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선거 전날 이곳 바닥을 샅샅이 훑고서야 겨우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1년간 조직표를 다지며 선거를 준비해 온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 측은 투표율이 당초 예상보다 높아지는 것을 보고 패배를 예감했다고 한다. '박근혜 바람'이 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 '영남=한나라당 독식'의 구도가 깨졌다는 점은 확실해졌다. '박근혜 바람'에만 거의 의존하다시피하는 한나라당의 영남권 대책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유권자 이념성향의 변화, 지역구도 완화 등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다양한 표심은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을 앞둔 각 당의 전략 수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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