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강아지가 아니라 천사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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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각장애인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키우는 소현이네 가족. 왼쪽부터 어머니 김소향씨, 소현양, 아버지 조성호씨. 앞줄에 의젓하게 앉아있는 개는 리라.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 않고, 먹을 걸 봐도 달려들지 않고, 다른 개가 지나가도 쓱 한번 쳐다보는 게 고작인 개.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겉모습만 개일 뿐 타고난 본성은 거의 잃어버린 존재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가족과 함께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키우는 자원봉사'(퍼피 워킹)를 하는 조소현(9.경기도 용인시 교동초등학교 3년)양은 일기장에 '안내견은 사람도 개도 아니다. 아마 천사인가 보다'라고 썼다.

소현이네가 키우는 강아지들이 처음부터 '천사'는 아니었다. 지난해 3월 생후 9주째 맡았다가 올해 1월 안내견학교로 보낸 하나, 하나를 보낸 뒤 사흘 만에 맞아들여 다음달 1일 떠나 보낼 리라 모두 여늬 강아지나 다름없었다. 10개월여 동안 소현이네 가족이 사랑과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훈련시킨 결과 안내견 후보다운 의젓함을 갖추게 된 것이다.

"자원봉사자 가정에서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키워진 후보 강아지들은 학교에서 엄격한 테스트를 받아야 해요. 합격하면 재교육 과정을 거쳐 안내견으로 활동하지만, 떨어지면 일반 가정에 분양되죠."

어머니 김소향(37)씨는 "하나가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많이 섭섭했는데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하더라구요"라고 했다. 평범한 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서란다. 하지만 "안내견을 분양받길 바라는 시각장애인들을 생각하면서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소현이네가 '퍼피 워킹'을 시작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소현이가 2003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시력검사에서 약시 판정을 받은 것이다. 시력검사표의 가장 큰 글씨조차 읽지 못하는 소현이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교실 맨 앞줄 지정석에 앉는다. 시력을 키우기 위해 한쪽 눈을 가리고 지내는 치료도 받는다.

소현이는 "눈이 안 좋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불편한데 앞을 볼 수 없는 분들은 어떨까 생각해 왔다. 마침 퍼피 워킹 자원봉사자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안내견은 56마리. 미국(1만마리)이나 일본(900마리)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mydog.samsung.com)가 무상 분양을 하는데, 퍼피 워킹 자원봉사자(32명) 부족으로 한해 10여 마리를 지원하는 데 그친다. 후보 세 마리당 한 마리 정도만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도 한 이유다.

소현이 아버지인 조성호(38.삼성전자 근무)씨는 "온 집안에 털이 날리고 매일 집 밖에서 배변훈련을 시켜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면서 "그래도 지난 2년 동안 개를 키우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현이네는 다음달 리라를 보낸 뒤 세번째 강아지를 맞아들일 계획이다.

글.사진=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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