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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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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논쟁의 초점

의사와 한의사의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 붙었다. 최근 대한한의사협회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한의사들은 의사 측의 방해와 복지당국의 책임 회피로 의료인인 한의사가 진단의 객관화를 위해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진단기기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돼 왔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면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며,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봤다.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 줄 것

백태현
상지대 한의과대 교수

1965년 인텔의 공동 창립자인 고든 무어는 “반도체 집적회로 성능이 1.5년에 2배씩 좋아진다. 앞으로 10년은 계속된다”고 주장했으나 모두 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든 무어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더 집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최근에는 장난감 칩의 용량이 1950년대 모든 컴퓨터를 다 합친 것보다 커졌다. 이렇듯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은 현대사회에서 모든 학문 및 산업 다방면에서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지만 유독 대한민국 한의학만이 이러한 과학기술을 응용해 환자를 진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행 의료법 어디에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부당하게 제한을 받아왔으며, 그 주요 이유가 바로 ‘한의학은 해부학을 근거로 하고 있지 않다’는 사법부나 행정부의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다.

 알고 보면 ‘해부(解剖)’라는 용어 자체가 BC 1세기께 저술된 『황제내경』이라는 한의서에서 유래된 용어다. ‘손으로 피육을 더듬어 인체를 가늠할 수 있고 죽으면 해부해 관찰할 수 있다’라는 설명에서 한의학이 탄생할 때부터 해부학은 그 근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목구멍에서 위까지의 길이가 1척 6촌이고 위는 꾸불꾸불한데 똑바로 펴면 길이가 2척 6촌이고 너비는 1척 5촌이며 직경은 5촌이고 용량은 3말 5되이다…장위에 음식물이 들어가서 배출되기까지의 길이가 총 6장 4촌 4푼이다’라고 위장 및 오장육부, 혈맥, 피부, 근육, 골격 등의 위치와 중량, 체적, 용량, 길이 등에 대해 설명했다. 동시대에 저술된 『난경』이라는 한의서에는 간(肝)을 좌우로 나누고 좌에는 3엽, 우에는 4엽 합해 모두 7엽이 있다고 했는데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간의 해부학적 분류법인 쿠이노 분류법, 즉 1954년 프랑스 의사인 클로드 쿠이노가 문맥의 혈류에 따라 간좌엽 4구획, 간우엽 4구획 총 8개 구역으로 분류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이렇듯 기원전에 저술된 한의서에 기재된 한의학의 해부학적 내용은 현재 해부학 지식과 비교해 봐도 별 차이가 없다.

 한의학은 해부학적 이론을 토대로 기능적·기질적 질환으로 인해 신체에 나타나는 여러 징후를 합참(合參)해 내부 장기의 질병 여부와 신체의 건강 성쇠를 판단한다. 따라서 ‘한의학은 해부학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잘못된 사실이다. 한방 임상에서 합법적인 실용화가 되지 않은 까닭에 현대 진단기기 관련 과목들의 교육의 질과 양이 의대 교육과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합법적 실용화를 거치며 철저한 교육과 검증을 통해 전문적 식견을 넓혀 가면 될 일이며 의사회에서 교육 문제를 가지고 국민의 안전을 운운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X선과 초음파 진단기기 등은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문명의 산물로 의사들이 개발한 기기가 아니며, 그 원리는 해부학이 아니라 X선이나 초음파라는 물리학 원리에 기초해 인체를 관찰하는 가치중립적 기기일 뿐이다.

 현대과학은 유구한 인류 문화역사의 산물로서 모든 인류가 누구나 평등하게 향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지 일부 개인이나 집단이 ‘특허권’이라는 합법적인 예외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배타적 독점권을 절대 주장할 수 없다. 한의사들 역시 X선이나 초음파를 활용해 환자를 보다 정확히 측정하고 관찰해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음에도 오직 우리나라 의사들은 자신만 써야 한다는 직능 이기주의적 독점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은 절대불변의 진리다. 국가에서 의료인으로 인정하는 한의사가 국민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과 기기를 활용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면 결국 한의학을 통해 고칠 수 있는 질환을 고치지 못하게 되는 국민이 그 피해를 볼 뿐이다.

백태현 상지대 한의과대 교수

오히려 환자 안전 위협할 것

안덕선
고려대 의대 교수

현 정부는 한의사에게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풀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용감한 정책을 예고했다. 의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 개혁, 시장경제 활성화 그리고 일자리 창출 방안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효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 까닭을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의료는 시장경제 논리만으로 작동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에만 의존해 파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의료 전문 자격사 개방 정책이 시장경제 확대 논리가 가져올 위험성과 윤리적 문제로 무산된 것이 좋은 사례다. 둘째, 의료는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 졸업 후에도 5년 이상 오랜 수련을 요구받는 것도 환자의 안전을 일차적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 면허는 직무의 안전성을 위해 고도의 교육과 기술을 습득한 사람에 한해 독점적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소비자와 사회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한의학, 서양의학 그리고 치의학으로 구성된 3원화된 의사면허 제도를 갖고 있으며, 각 면허는 상호 배타적이다. 의사가 한두 학기 치과학이나 한의학 강의를 들었다고 해서 그 의사가 치과의사나 한의사 일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 면허도 차종에 따라 다른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의학 교육에서 영상의학(X선·초음파) 강의가 있었다고 해서 한의사가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 강의와 임상실습, 인턴 그리고 전공의 수련교육 과정을 모두 마쳐도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면 X선이나 초음파를 정확하고 책임 있게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전문의 또한 조금만 애매해도 영상의학 전문의에게 판독을 의뢰한다. 학부 강의만으로 현대적 영상기기에 정통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대 의학교육과 수련 과정을 너무 단순화한 대표적으로 비전문적이고 짧은 견해에 불과하다.

 서양의학의 최첨단 기술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최근 한의학의 수요가 증가하는 호주 등 외국의 사례는 바로 서양의학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선진국에서 한의사에게 서양의학을 이용한 진료까지 허가한 것은 아니다. 한의사의 고유한 한방의료에 대한 기대나 역량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의사와 협진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의료인이 두 가지 의료 직역의 일을 할 경우 두 가지 면허를 모두 보유해야 한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 특수 영역의 수술은 대개 의사와 치과의사 두 가지 면허를 동시에 소지한 외과계열 전문의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것 역시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도 한방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고용해 의학의 과학적 해석을 이용하는 협진 형태가 진행되고 있다.

 한방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으로 인해 불필요한 검사비가 증가할 것도 뻔히 예견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나친 검사로 소모적인 의료라고 지탄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의료비가 절감된다는 한의학계의 주장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따라서 한방에서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환자의 불편과 의료비를 절감한다는 주장은 정당성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국민 모두가 한방의 현대적 기기 사용을 원한다는 터무니없는 과장된 주장도 가장 높은 수준의 공신력을 가져야 하는 전문직 단체로서 해서는 안 되는 주장이다. 부풀려진 국민의 편의성보다는 국민과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즉흥적인 한방의 현대적 의료기기 허용보다는 근본적인 양방과 한방의 통합 및 면허와 교육에 대한 미래지향적 정책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