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한·일 대표DJ 요즘 클럽음악을 말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본 대표 서영철(재일동포 2세·왼쪽), 한국 대표 지누(오른쪽). 안성식 기자

요즘 새롭고 특별한 음악을 원하는 사람은 클럽에 간다.

최신 음악을 대중에게 전파하던 다방이 사라진 이 시대, DJ(디스크 자키)는 클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클럽 DJ는 좋은 음악을 전파하는 동시에, 이미 만들어진 음원을 즉석에서 섞어 새 음악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다른 이름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는 DJ 10여 명이 한 음반에 사이좋게 음악을 담아냈다.

앨범 제목도 '동양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뜻하는 '이스트로니카(Eastronica)'로 붙였다.

이 음반 제작에 참여한 한.일 양국의 대표 DJ 지누와 DJ Little Big Bee(서영철)를 만났다.

DJ 지누는 그룹 롤러코스터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일본 대표인 서영철씨는 조총련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 2세. 유럽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최정상급 DJ이면서 '플라워 레코드'의 대표이기도 하다.

양국 대표 뮤지션들이 들려주는 요즘 음악 이야기-.

지난해 5월 서씨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공항 입국 심사관이 물었다.

"한국인입니까?"

그 순간 조총련계 학교를 졸업한 뒤 20년간 잊고 지냈던 한국말이 고스란히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비로소 고향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그에게 한국의 음반사에서 이스트로니카 작업을 제의해 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국의 클럽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려고 꿈틀대던 일본의 1980년대 후반과 닮았습니다. 90년대 성장기에 접어들었던 일본 클럽 음악이 정말 재미있었는데, 한국도 이제부터 재미있게 될 것 같습니다."(서영철)

지누
한·일 뮤지션이 앨범 함께 작업, 한국인엔 큰 의미

서영철
한국의 클럽은 성장하려고 꿈틀, 이제 재밌어질 것

"일본은 유럽이나 미국의 음악을 우리보다 10~15년 먼저 받아들였죠. 무척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고 있고, 음악을 대하는 시각도 달라요. 좀더 깊이 있고 진지하죠."(지누)

지누는 일본 음악에 빠져 자란 세대다. 일본 음악은 방송도, 음반 판매도 금지돼 있었지만 친구들과 공공연히 해적판을 돌려 듣곤 했다. 반면 서씨는 한국 음악을 거의 접해보지 못했다.

"드라마 한류를 타고 일본에 소개된 곡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다른 한국 작품은 거의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보아는 10대에게 인기가 있다면, 드라마 OST는 50~60대 중년 여성들이 좋아하죠. 막상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20~30대가 들을 만한 한국 음악은 별로 소개되지 않았어요. 이제 한국의 20~30대가 즐기는 음악을 일본에 소개할 수 있게 됐습니다."(서영철)

11일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은 일본에서도 곧 선보인다.

"만약 한국과 미국의 뮤지션이 모여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면 별 의미가 없을 거예요. 한국과 일본은 도저히 같이 작업할 수 없는 사람들 같잖아요. 한국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작업입니다."(지누)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한국을 무척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음식이 맛있고, 한국 여성이 예쁘기 때문이긴 하지만요. 독도를 비롯한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서영철)

한.일의 DJ가 한 음반에 나란히 작품을 싣는 작업은 양쪽 모두에게 자극이 됐다. "한국 뮤지션들의 작품을 듣고 놀랐습니다. 이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어요."(서영철)

"전체적인 클럽 음악의 수준을 본다면 일본이 훨씬 앞서지요. 그래도 이번 앨범에서는 엇비슷하게나마 수준을 맞추려고 열심히 했습니다. 작업에 참여한 DJ들의 한국 클럽 음악에 대한 책임감은 커졌을 겁니다. 이 한 장의 앨범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요."(지누)

사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DJ라면 '판돌이'나 라디오 DJ를 연상하는 게 보통이다. 클럽을 찾는 사람들도 음악보다 춤이나 술, 혹은 '작업'에 몰두하는 편이다.

"한국 관객들의 폭발력은 엄청납니다. 그러나 일본 관객들은 폭발을 하지 않고도 편안하고 즐겁게 몇 시간씩 음악을 즐깁니다. 그럼 DJ가 '즐겨라, 즐겨라'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표정의 음악을 만들면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죠."(서영철)

"한국 사람들은 자정~오전 1시에 강하게 폭발하고, 그 뒤엔 우르르 집에 가요. 파티는 오전 4시에 끝나는데…. 무슨 노래인지 모르고, 음악도 신나지 않으면 집에 가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음악을 많이 접하게 되면 더 오래, 꾸준히 즐길 수 있겠죠."(지누)

"일본에선 DJ의 음악을 듣고 감동해서 우는 사람도 있어요. 클럽은 흥겹게 들썩이는 것만이 아닌, 희로애락을 모두 건드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소로 자리 잡은 겁니다."(서영철)

물론 일본도 10여 년 전엔 지금의 한국과 비슷했다.

"일본에서도 옛날에는 DJ가 판돌이인 줄 알았습니다. 클럽 DJ들이 꾸준히 활동하면서 새로운 개념이 정착했지요. 이번 작업을 통해 한국의 DJ에게서 큰 가능성을 봤습니다. 많은 뮤지션이 경쟁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내면, 몇 년 후에는 세계적인 히트곡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서영철)

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이스트로니카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실력파 DJ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의 지누.달파란.진욱.캐스커.가재발.로맨틱 카우치.saintbinary, 일본의 서영철.Jazztronik.Sunaga-t Experience.STUDIO APARTMENT.레게 디스코 락커스 등이 참여했다. 애니메이션 '프란다스의 개'의 주제가를 샘플링한 '라라라'를 비롯해 한국 DJ들의 작품은 기존에 소개된 곡을 리믹스한 것들이라 친숙하면서도 새롭다. 스펙트럼이 다양한 일본 DJ의 작품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참여 아티스트가 많아 한 장에 모두 담지 못했다. '이스트로니카 에피소드 2'도 곧 발매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