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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깎고 계약 깨고 … 앱 개발사 울리는 유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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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애플리케이션 제작사를 운영하는 A대표는 최근 고객으로부터 “광고를 보고 링크를 클릭했는데, 앱 장터에서 해당 앱을 찾을 수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개발한 앱을 알리기 위해 수백만원의 광고비를 쓴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더욱이 앱 장터 운영사인 B사로부터는 아무런 통보도 없었다.

 부랴부랴 확인해보니 상품 설명란에 특수문자를 많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B사가 해당 앱을 없앤 것을 알아냈다. 그는 특수문자를 지우고 앱을 다시 업로드했지만 앱은 계속 삭제되기만 했다. 앱의 등록-삭제가 반복되자 그는 개발자 계정까지 정지당했다.

 A대표는 “계속해서 삭제하는 이유를 묻는 e메일을 여러번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가이드 라인을 위반했다’는 형식적인 내용뿐이었다”며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됐는지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앱 등록을 차단하는 것은 횡포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디지털 콘텐트 시장의 불공정 거래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유통망·플랫폼을 장악한 대형 유통사들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변경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2일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따르면 이런 불공정 거래는 구글·애플·이동통신사 등이 운영하는 앱 장터뿐만 아니라 웹툰·게임·컴퓨터그래픽·애니메이션 등 산업 전반에 만연해 있다.

 모바일 게임 제작사를 운영하는 C대표는 최근 게임 유통사(퍼블리셔)가 갑자기 계약을 뒤집어 수개월간 해오던 작업을 접어야했다. 당초 계약한 퍼즐게임이 아니라 역할수행게임(RPG)으로 장르를 바꿔달라는 주문이었다. 이미 제작비를 다 쓴데다, 시간도 촉박했지만 그는 퍼블리셔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C대표는 “불공정하다고 항의하면 업계에 소문이 나 다음 거래를 따내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수호’의 이영대 대표변호사는 “시장에 콘텐트 제작사는 많은 반면, 유통사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통사의 목소리가 셀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고,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며 선급금 반환까지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진단했다.

 디지털 콘텐트 분야는 하나의 아이템으로 여러 콘텐트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 받았다. 웹툰에서 시작해 드라마·만화책·영화 등으로 재탄생한 ‘미생’, ‘전설의 주먹’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다. 콘텐트 수출을 이끌 ‘제 2의 한류’라는 평가에 산업도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유통사의 특정 플랫폼·네트워크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불공정 거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NIPA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트를 개발하는 사업자의 56.9%가 불공정 거래를 경험했으며, 70.2%는 불공정 거래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연간 4746억원에 달한다. 특히 마땅히 신고할 곳이 없다보니 불공정 거래 경험자 중 3.6%만이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 가운데 해결되는 비율은 4건 중 1건(27.2%)에 불과했다.

 이런 관행은 산업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단가 후려치기, 부당한 수익분배, 낮은 저작권 인식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제작사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새 사업자는 시장에 뛰어들기 망설인다. 유망 제작사 가운데서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황성익 한국무선인터넷콘텐트협회장은 “무형의 자산인 디지털 콘텐트는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고, 유통기한도 없기 때문에 이른바 ‘갑’에 대한 견제가 더욱 절실하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미생과 같은 성공사례는 다시 나오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불공정 거래를 방지하는 내용의 ‘디지털 콘텐트 표준계약서’를 제정하고, ‘디지털 콘텐트 상생 협력 지원센터’를 개소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피해를 입었다면 센터에서 무료로 상담을 받고, 법률 자문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표준계약서 사용은 법적인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일고 있다. 유통사가 자신이 유리하게 쓸 수 있는 계약서를 두고 굳이 표준계약서를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영대 변호사는 “중소 제작사의 권익이 보장되야 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이런 환경에서만 양질의 콘텐트가 생산·소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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