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국민 불안감 줄이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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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위험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전쟁의 위험과 체제변동의 위험이다. 전쟁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는 재앙이다. 한국전쟁 이후 늘 북한의 남침 위협에 직면해온 우리나라는 이 때문에 항상 국가신용도를 평가할 때 점수를 깎이고 들어갔다. 북한의 핵개발로 위기가 고조되면 점수가 더 깎인다. 그 대가는 이자를 더 물거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거나, 들어오려던 투자가 철회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불이익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 때문에 우리 경제가 지난 반세기 동안 알게 모르게 지불한 비용이다.

체제변동의 위험은 당장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현실화되면 매우 심각하다. 체제는 통치방식과 경제시스템을 아우르는 국가의 기본 틀이다. 민주적인 정부가 독재체제로 바뀌거나 시장경제 대신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택할 우려가 있다면 그 나라의 위험도는 당연히 높아진다. 예컨대 정변이 일어나 새로운 집권세력이 국유화를 선언하고 외국인 자산을 몰수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큰 변고가 없다. 이전 정부가 진 대외채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는 대외관계 단절과 국제적 고립이다. 이 같은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산유국들의 유전 국유화나, 공산화한 국가에서 벌어진 사유재산 몰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위험 때문에 국가 간 수교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투자보장 협정을 맺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소련이나 중국과 수교할 때도 그랬다. 국가 간의 협정이라는 국제적인 규범으로나마 위험을 줄여 보자는 노력이다.

체제변동의 위험은 국가 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체제가 바뀌면 기존 체제에 맞춰 이루어진 모든 정치행위와 경제활동의 근본이 무너진다. 사유재산권과 법치주의에 근거한 모든 권리와 계약이 송두리째 부정당한다. 그 위험의 크기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체제변동은 일상의 삶의 양태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생멸을 좌우한다. 체제변동의 위험이 커지면 투자고 저축이고 따질 겨를이 없다. 혁명적인 정변이 아니더라도 체제변동의 위험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사유재산권이 수시로 침해당하고, 법치주의의 원칙이 공공연히 훼손되는 것은 체제변동의 불길한 전조다.

최근 한 대학교수가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일단 학문의 자유라고 하기엔 그의 발언이 담고 있는 체제변동의 위험이 너무 크다. 그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에 의해 가려지겠지만 논의 과정에서 한 가지 꼭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찬반을 떠나 대한민국의 체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두자는 것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여권 인사들의 입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향하는 체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이 없이 학문적 자유와 인권만을 내세우면 혹시 다른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오해를 살 우려가 크다. 당연히 체제변동에 대한 불안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특정인의 인권보호보다 체제변동의 불안감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고 급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