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에 비행기 수출한 '한국항공 우주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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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이면 우리 기술로 만든 비행기가 인도네시아로 첫 수출된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적으로 미국.프랑스.러시아 등 10여 개국에 불과한 항공기 수출국의 대열에 끼게 됐다.

수출 항공기는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자체 개발해 공군 훈련기로 납품했던 국산모델 KT-1을 부분 개조한 것이다. KAI는 인도네시아 공군이 요구해 온 항법 및 통신운용 기준에 맞춰 KT-1을 재설계했으며 KT-1B로 명명했다.

이달 말 2대를 시작으로 내년 8월 말까지 모두 7대가 인도네시아에 인도된다. 대당 가격은 5백만달러(약 60억원)로 중형차 1천대의 수출액과 맞먹는다.

한국이 항공기 수출국으로 부상한 데는 KAI의 KT-1 사업팀 정병학(48)부장.김진석(45)차장.안창용(43)차장.배현준(41)과장.유원균(39)차장 등 패기넘치는 기술자 5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출 드라마는 1999년 겨울 정병학 부장이 창원 방위산업체를 방문한 인도네시아 공군 장군 일행 4명을 찾아가 KT-1을 설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KT-1은 94~2000년 F-16 전투기를 조립생산하면서 축적한 기술을 토대로 우리 기술로 설계 제작한 토종 비행기. 국산화율이 가격대비 65%, 부품수 90%에 이르는 데다 한국 공군이 무사고 비행 1만시간을 돌파해 성능을 입증받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인도네시아 장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사업팀은 10여차례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설득한 끝에 2000년 2월 인도네시아 공군회관에서 수출 계약을 했다.

비행기 수출 경험이 없어 우리가 말레이시아에 장갑차를 수출한 자료를 토대로 벤치마킹하는 등 고생 끝에 이룩한 성과였다. 계약 당시 인도네시아 공군은 열대 기후에서 잦은 벼락 예방장치를 장착하라는 등 10여 군데의 변경을 요구했지만 사업팀은 끈기있게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2001년 3월 수출을 포기해야 할 위기가 왔다. 미국이 동티모르 섬 독립투쟁을 막는 인도네시아에 군수품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 조치로 KAI는 항공기 제작에 필요한 부품 38종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할 수 없었다.

정병학 부장은 "미국 자문변호사에게 문의했으나 인도네시아와의 계약파기만을 권고할 뿐이었다"며 "미국으로 직접 가서 미 국방부.의회 등을 한달 동안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미 의회로부터 살상용이 아닌 항공부품은 수출 금지 예외품목으로 인정하는 관련법규 개정까지 이끌어낸다. 그래도 몸을 사리는 미국 부품업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해 부품 수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지난 3월부터는 배과장이 인도네시아 정비사를 교육시키고, 안차장은 시험비행을 지휘하는 등 마무리작업도 했다. KAI측은 콜롬비아.중국.터키.필리핀 등 20여개국에서 상담이 잇따르고 있어 2012년까지 1백50대(5억달러)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천=김상진 기자, 사진=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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