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지방 문화 '우리도 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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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을 제외한 우리네 실정이 그렇다. 지방은 문화 갈증으로 목탄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라고 예외가 아니다. 돈 많은 분당과 일산은 사정이 낫지만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문화의 불모지다. 지자체별로 예술회관이니 문예회관이니 그럴 듯한 공연장은 가지고 있지만 쓰임새는 크지 않다. 때론 중.고등학교 학예회가 열리고, 심지어 민방위 훈련장으로 전락하곤 한다. 가끔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기도 하지만 이미 서울에서 몇 년 전에 공연된 철 지난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한 반기랄까, 지난해 경기지역 문예회관 협의회(경문협.회장 소홍삼)가 결성됐다. '협의회'라 하면 무슨 탁상공론이나 하는, 높은 분들 모임일 것 같지만 경문협은 철저히 공연 기획 실무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경기도 지역의 안정적인 '공연장 망(網)'구축이 지난 1년간 경문협이 중점적으로 한 일이다. 사실 공연 기획자 역시 지방 공연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비싼 돈 들여 한군데서만 공연해 봤자 적자가 날 뿐이다. 그간 지방 공연을 꺼려온 이유다.

경문협엔 의정부.군포.부천 등 14개 지역 문예회관이 포함돼 있다. 경문협을 통해 경기도 여러 지역의 순회 공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이달 내한한 러시아 볼쇼이 합창단이 서울 이외 경기도 4개 도시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경문협의 역할이 컸다.

단순한 배급망을 넘어 경문협은 이제 제작까지 손을 뻗쳤다. 록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음달 무대에 올린다. 경기도 8개 지역에서 순회 공연을 한 뒤 내년엔 서울에서도 공연할 계획이다. 서울에서 무조건 내려오던 '하향식'과는 정반대의 '상향식' 공연 풍토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영화가 현재와 같은 르네상스를 맞게 된 데에는 멀티플렉스 등 질 좋은 극장도 분명 한몫 했다. 탄탄한 '공연장 망'을 구축한 경문협이 지방 문화 활성화의 새 기수가 되길 기대한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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