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멀리서|후회없는 방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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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학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때는 유별나게 힘에 겹고 짜증스럽기까지했던 한학기였다. 벌써 7윌중순에 접어들고보니 정말 고대했던 이 방학을 어떻게보내면 후회가 없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모든 학교의 방학이 시작된다. 즉 배움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는 날이 가까와지고있는것이다.
물론 배운다는것 자체가 신바람나는 일이라면 이것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무엇을 배우고 가르친다는것은 누구에게나 매우힘든 정신적 노동으로 받아들여진다. 더군다나 자기가 원하는바를 배운다거나 가르치는것도 아니고, 교육관료주의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결정된 각본에 충실하다보면 나에게서 내가아닌 나를 발견하는 자기소외에 빠지기 쉽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볼때 방학은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마음내키는대로 이용할수없는 속박된 시간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이해된다. 다시말해서 타인에 의한 결정으로부터 자유롭게 존재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결심여하에 따라 방학을 우리의 심층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욕구를 실현시킬수 있는 시간으로 이용할수있는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선생이 교직을 소명의식에서보다는 단순히 생활의 수입원천으로 보고, 학생이 공부를 인성개발의 목적에서가 아닌 한낱 사회적 지위향상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상황아래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의 자기실현기회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학생이 방학을 이용하여 그동안 꼭 읽고싶었던 문학작품에 손을 댄다든가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취미활동에 시간을 보내는것, 그리고 선생이 그동안 가까이 할수없었던 관심분야에 모처럼 눈을 둘려본다는것등은 자기가 평소에 하고싶었던 일들을 자발적으로 실천에 옮겨본다는뜻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던 자아실현의 계기가 되는것이다.
따라서 방학은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목적지향적인 행위로서의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할수있다. 다만 이때 그목적이 타자지향적인것이 아니라 자기내부지향적이라는데 차이가 있을뿐이다.
이와같은 방학선용의 당위론적 관점에서 볼때 현재 우리나라에서 향유되고있는 방학의 실태에는 문제점이 많은것같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러한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학을 단순히 삶을 엔조이한다는 차원에서 보내는 경우를 주위에서 흔히 발견하게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남성만의 집단을 만들어 등산·낚시·관광등의 행락길에 오르고 아들은 아들대로 그룹을 만들어 산과 해변을 찾아 젊음을 만끽하는 향락과 소비위주의 시간보냄이 관습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선진산업제국에서 봉착하고 있는 문제. 즉 현대인이 과연 여가를 의미있고 인간의 몸위에 맞게 선용할 능력이 있는가를 회의하게된다.
독일의 사회학자 「H·셀스키」(Schelsky)에 따르면 현대인은 여가를 통해서 산업·관료주의적인 생산과정에서 벗어날수 있지만, 이것을 위해서 오늘날 산업사회의 새로운 의무로서 등장하는 소비와 욕구라는 가지에 의해 지배받는 또다른 속박에 빠져 들어간다고 한다.
실로 소비가 우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 걸맞게 모든 레져산업은 가능한 매스미디어상의 선전술을 총동원하여 사람들을 소비활동으로 부추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유출되는 대중문화제작자들의 조작과 암시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비록 착용된 신분에서나마 1년에 한번쯤은 피서지에서 왕자와 같은 생활을 즐기고 싶은 충동을 갖게되는것이다.
이상과같은 관계에서 볼때 모처럼 얻게되는 이 긴 여름방학을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적당히 놀고보려는것이 아니고 어떻게 자기발전을 위해서 유용하게 이용해볼것인가를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어떻게보면 방학은 그동안 제깍기 분산되어 자기역할만에 충실했던 가족구성원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면서 함께 활동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한 가족으로서의 「우리의식」을 되찾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수있을것이다.
어쨌든 방학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라는 의미에서 자기와 자기주변을 조용히 여유를 갖고 돌이켜볼수있는 귀중한 시간이되어야 할것이다.

<사진>심윤종<성균관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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