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사면초가'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 조류독감 조사조차 난관=인도네시아 정부와 양계업자 간의 충돌이 험악해지고 있다. 양계업자들이 가금류 위생실태 파악차 나오는 농업부 관리의 양계장 출입을 봉쇄하면서 방역은커녕 기초 역학 조사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국내 양계산업의 60%를 차지하는 11개 업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닭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서다. 그러나 농업부는 "불량한 위생상태를 숨기기 위한 변명"이라며 "이렇게 나오면 조류독감 퇴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7월 발생한 조류독감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선 이제까지 7명이 숨졌다. 감염자는 증가 추세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대재앙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기초 조사조차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 오리무중인 테러범 수사=발리 테러 발생 직후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사전에 테러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보기관 책임자인 수다투어 군 참모총장은 "국민이 테러정보에 무관심한데 어떻게 테러를 막을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범인 색출을 위한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테러 발생 원인에 대한 추측만 난무한다. 압두라만 와히드 전 대통령은 "발리 관광이 다시 활기를 띠자 이를 시샘한 일부 선진국의 관광업체들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변했다. 일부 언론은 "무신론자들이 인도네시아 종교계 분열을 노리고 테러를 자행했다"고 추측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선 유가 인상에 따른 사회 불만세력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정부가 벌인 자작극이라는 분석까지 내놓는 판이다.

◆ 폭력으로 치닫는 종교갈등=인도네시아 교회 이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30개 개신교 교회와 천주교 성당이 이슬람 교도의 공격을 받고 강제 폐쇄됐다. 현지 경찰은 수시로 교회에 들이닥쳐 기물을 부수는 무슬림의 공격을 본체만체한다.

참다 못한 기독교 대표가 최근 유도유노 대통령을 만나 대책을 호소했다. 그러나 '종교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들었다. 교회 이사회는 "인도네시아는 사실상 종교자유를 허용치 않는 국가"라며 "이는 종교의 위기이자 인도네시아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 유가 인상에 거세지는 항의=최근 자카르타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에 '유도요노는 사임하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고 홍콩 언론은 보도했다. 정부가 석유보조금을 삭감하고 유류제품 가격을 125% 인상한 데 대한 주민들의 항의다. 10월 첫째 주에만 전국 10여 개 도시에서 10만여 명이 유가 인하 요구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확산되자 정부는 1만3000여 명의 보안군에게 전시에 준하는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민경선 KOTRA 자카르타 관장은 "유가 인상은 서민들에게 너무 민감한 사안이어서 시위가 언제 폭동으로 변해 정권을 위협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