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지눌 없이 성철 없다" 프랑스 신부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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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불교 모임에 참석한 멋쟁이 신부…. 그런 '그림'에 더해 서 신부는 한국불교의 갈등구조를 풀어낸 해결사 역할까지 해냈다. 갈등구조란 '내 스승' '네 스승'의 구분 때문이다. 일테면 지금도 송광사는 해인사를 쳐다보며 "성철 때문에 고려시대 지눌이 박해받는다"며 억울해 한다. 생전의 성철은 송광사에서 활동한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수행론을 '미지근하다'고 비판하며 급진적인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내세웠다. 단박에 깨쳐 단박에 수행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 뒤 해인사 대 송광사의 대립 속에 스승 자랑과 상대 깎아내리기가 무성했다.

오죽하면 서 신부가 "지난 20년 내내 성철 비판의 소리를 들어왔다"고 고백했을까? 즉 사람들은 성철의 엄격한 수행을 인정하면서도 역사 속의 지눌마저 짓밟는듯한 '나홀로주의'에 고개를 흔든다. 지눌 대 성철의 이분법을 넘어선 서 신부의 논리는 명쾌했다. "지눌 없이 성철 없다"는 것이다. 각자는 시대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걸고 자기의 목소리를 냈고, 따라서 둘 모두를 한국불교의 위대한 전통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서 신부는 큰 스승들의 말꼬리(언어의 경계)에 매달리지 않음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다. 한걸음 나아가 그는 예수의 깨달음이란 것도 돈오돈수라는 주장까지 펴며 종교간 대화까지 시도했다. 역시 성철 연구로 지난해 파리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던 내공과 시야는 인정할 만하다. 결국 이날 한국불교는 하나를 배웠다. 교훈을 정리하자면 이쯤이 안될까 싶다. 진정한 자기 사랑이란 애집(愛執)이 아닌 너그러운 관용이라는 점….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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