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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부유층과 나머지로 갈린 미국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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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격차가 어떻게 생기는지, 어떻게 고질화하는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자들.

정부 정책은 미국의 초부유층과 나머지를 가르는 쐐기다. 때때로 경제가 위축되고 팽창함에 따라 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격차도 좁아지거나 넓어지게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미국이 정부 규정을 바꾸지 않는 한 이 같은 골은 어느 때보다 더 깊어진다. 에릭 슈나이더먼 뉴욕주 검찰총장이 이를 설득력 있게 평했다. “부의 분배는 자연이 결정하지 않는다. 정책으로 결정된다.”

희소식은 극단적인 격차가 문제라는 사실을 거의 모두가 이해한다는 점이다. 2014년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푸어스까지 격차가 경제성장을 지체시킬 정도로 심각하다고 지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불행한 소식은 극단적인 격차(어떻게 생기는지, 어떻게 고질화하는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의 원인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격차 확대의 위험(Divided: The Perils of Our Growing Inequality)’에서 나는 이 같은 정책전환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하려 했다. 미국 민주주의가 기어를 바꿔 넣고 위험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취해야 할 중요한 첫걸음이다

얼마나 위험한가? 의사이자 공중보건 강사인 스티븐 베즈루카에 따르면 미국에서 하루 영·유아 47명이 사망한다. 이들은 건강의료와 공중보건이 더 우수한 스웨덴에서 태어났더라면 살아남았을 것이다.

개념을 제대로 알자

우리는 종종 낙수경제학(trickle-down economics, 경제 상층부의 성장이 흘러 넘쳐 아래로 파급되는 효과)을 거론한다. 30년 전 민주당에서 레이거노믹스를 깎아 내리기 위해 생각해낸 조롱조의 용어다. 그러나 낙수는 잘못된 개념이다. 사람들에게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레이거노믹스에 낙수효과는 없었다. 나이아가라 역류(Niagara up)만 있었을 뿐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0년 선거운동을 주의 깊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이를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이건은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소득을 누리도록 하고자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높은 세율이 이익을 사업에 재투자하는 방향으로 유도했기 때문이다. 이익을 빼돌려 사치스럽고 과시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려고 하지 않았다.

레이건이 감세를 단행하자 여러 채의 저택, 전용 제트기, 경매에서 1억 달러(약 1000억원) 이상 호가하는 미술품 등을 소유한 가구가 많아졌다. 돈 많은 사업가가 그런 사치품을 사들일 때는 본질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 사업을 확장하고, 임금을 인상하거나, 투자자 배당을 확대하는 데 자본을 투입하기보다는 사업자금을 뽑아가기 때문이다.

부자 중 최고 1% 부자가 그런 막대한 소득을 누리는 이유는 그들이 갑자기 더 똑똑해지고 더 훌륭한 장치를 발명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이 모두 게으름뱅이가 되기로 작정했기 때문은 분명 아니다. 바로 정부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은 극단적인 격차를 조장하는 정부 정책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정책은 사실상 성공을 가로막는 장벽이며 그런 장벽이 숱하게 세워져 있다.

레이건이 도입한 정책 아래서 의회와 사법부는 근로자의 경제력을 빼앗아갔다. 레이건은 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유일하게 미국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었다. 미국 지도자들은 세무감사 담당자, 고용안정 조사원, 공중보건 담당자 같은 사람들의 손발을 묶어놓았다. 그런 조치는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막대하지만 미묘한 보조금 지급이나 다름 없는 효과를 가져왔다. 탈세자, 무분별한 사업가, 그리고 종종 주변 사람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연방 및 주(州) 규제 위원회에는 업계 관계자만 우글거리고 상징적이고 아주 힘 없는 소비자 권익운동가만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대기업이 보통 사람의 호주머니를 털고 소규모 가족 기업의 싹을 짓밟도록 돕는다. 그 방법은 숱하게 많지만 극히 미묘하다. 대형 소매유통 마트와 전국적 호텔 체인들에 보조금을 지원해 지역 사업체에 불이익을 준다. 3000개 가까운 기업이 근로자 급여에서 주 소득세를 공제할 수 있도록 한다. 근로자는 회사에서 소득세를 공제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어떤 거창한 음모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다. 유일무이한 정책 목표는 없다. 대신 이 같은 정책들은 수도꼭지에서 꾸준히 똑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처럼 공식적인 특혜가 꾸준히 쌓여 형성된다. 마치 고대 석회암 동굴의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과 그 아래 석순과 유사하다. 이 같은 변화는 소리 소문 없이 일어난다. 한 가지 규칙, 한 가지 예외, 그리고 때로는 한 번에 한마디(가령 ‘해야 한다’가 ‘해도 된다’로 바뀌는 식)씩 떨어진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이 같은 규칙은 주류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 게다가 배경설명도 거의 또는 전혀 없다. 그 경이로운 동굴이 형성되는 것처럼 이 같은 정책 변화는 대다수 미국인에게 미스터리다.

격차를 설명한다

격차는 빈곤의 동의어가 아니다. 격차는 자원배분의 문제다. 연간 소득 36만 달러 안팎부터 상위 1%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중 절반은 소득이 50만 달러도 안 된다. 정말로 큰 소득을 올리는 그룹은 소득 분포도에서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다.

1% 중 상위 10%(즉 1000명 중 1명)는 200만 달러 안팎의 연 소득을 올린다. 이들 30만 명의 미국인이 올리는 소득은 하위 1억4000만 명이 얻는 수입보다 많다. 1%의 1%는 연 소득이 1000만 달러 내외다. 이들은 단 1년 소득이 수십 억 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미트 롬니가 그 바닥권에 속한다.

소득 최상위권 그룹의 소득이 얼마나 불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1966~2011년 하위 90%의 평균 소득 증가를 상위 1% 중 상위 1%와 비교해 보자. 2011년 90%의 가구 당 소득(물가상승률 감안)은 당시 물가 기준으로 불과 59달러 증가했다. 예컨대 그래프를 작성하는데 59달러를 나타내는 선이 1인치(2.54㎝) 높이라고 가정해 보자. 1% 중 1%의 소득증가를 나타내는 선은 8㎞ 높이에 이른다. 이제 2012년 비율을 설명하겠지만 산술적으론 의미가 없다. 2012년 대다수의 평균 소득은 1966년보다 몇 달러 적은 3만997달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상위 1% 중 상위 1%의 소득은 어땠을까? 2011~2012년 이들의 소득은 3분의 1이나 증가했다. 평균 2230만 달러에서 3100만 달러 가까이 육박했다.

자산 격차는 소득 격차와 달리 훨씬 더 크다. 2010년은 썩 경기가 좋은 해가 아니었다. 인구조사국 추산에 따르면 상위 1%의 순자산은 840만 달러가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대형 자산은 대부분 속성상 미과세 자본소득의 형태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상속세가 폐지될 경우 한 푼도 과세되지 않을 돈이다. 축적된 재산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후손에게 상속할 수 있다.

‘격차확대의 위험’ 앞 부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1년 캔자스주 오사와토미에서 한 연설이 실려 있다. 그는 연설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흉내를 냈다. 루스벨트는 1910년 바로 그 소읍에서 주요 정책연설을 했다. 그곳 출신인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했다.

“땀 흘린 대가 이상을 소유하는 사람과 땀 흘린 만큼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 간의 갈등이 발전의 핵심 조건이다. 그것은 특수이익 집단에 맞서 자치권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자유시민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특수이익 집단은 자유주의 정부의 방식을 비틀어 대중의 의지를 꺾기 위한 도구로 만든다.”

101년이 지난 뒤 이제 오바마가 시장 자본주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의 번영과 생활수준을 낳았다. 그러나 자유시장은 능력만 있으면 누구에게서든 무엇이든 가져갈 수 있는 무료 허가증이 아니라는 사실도 루스벨트는 알았다. 경쟁이 공정하고 개방적이고 정직하도록 보장하는 교통법규가 있을 때에만 자유시장이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그는 이해한다. 따라서 그는 독점을 타파했다. 그 기업들이 더 나은 서비스와 가격으로 소비자 유치 경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오늘날도 그런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기업들이 아동을 착취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식품이나 약품을 판매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올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오늘날도 그런 규제는 건재하다.”

그 마지막 부분, 즉 독점과 시장조작, 안전하지 않은 식품과 아동 착취 문제는 과거지사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지금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절보다 훨씬 더 깊게 뿌리 박힌 문제다. 그리고 미국이 소득과 자산 면에서 그렇게 극심하게 분열된 원인의 핵심을 이룬다.

독점적 기업 연합을 해체하고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해 미국이 전반적으로 번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루스벨트의 촉구에 오바마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모든 단계에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특혜를 타파하고, 모든 개인의 삶과 시민사회에 가능한 최대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그 투쟁의 본질이다. 이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적용된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그보다는 너무 오래 된 이야기라서 주류 언론기자들이 미처 간파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루스벨트는 큰 몽둥이를 휘두른 반면 오바마는 특권층만 받아주는 필드에 나가 골프채를 휘두른다는 사실이다.

오바마는 독점체제를 깨지 않는다. 그의 정부는 반경쟁적 대형 합병의 변죽만 울리는 어정쩡한 의문만 제기한다. 진행 중인 컴캐스트의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가 대표적이다. 그가 추진하는 전국민 건강보험은 비용을 줄이기보다는 비대하면서도 큰 이익을 남기는 건강의료 산업의 세력을 키워준다.

오바마의 첫 법무장관은 부패한 월스트리트 금융가들에게 물렁하게 대처했다. 모기지와 증권 사기, 탈세범 및 부정축재 독재자와 공모, 심지어 마약 밀매범들의 자금 수십억 달러 세탁 혐의로도 기소하지 않았다. 벌금과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이 오바마가 추구하는 전부다. 실제로 오바마가 지명한 후보자들은 어느 누구도 빌 블랙과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금융 규제당국자에서 범죄 전문가로 변신한 블랙은 한 세대 전 저축대부조합 스캔들 때 철두철미한 조사로 3000건 이상의 중형을 이끌어냈다.

오바마와 차기 대통령 출마를 노리는 모든 유력 주자가 모두 특혜를 타파하고, 자산을 유권자의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 만들며, 근로자들이 공정한 보수를 받도록 힘쓴다면 미국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루스벨트가 캔자스주에서 수만 명 군중에게 연설할 때처럼 말한다고 상상해 보라. “공동체는 공공복지가 요구하는 만큼 재산의 사용을 규제하는 권한을 지니며 모든 사람이 어느 수준이 되든 그 적용을 받는다”고 말이다.

[ 이 글은 ‘워싱턴 스펙테이터’ 잡지에 먼저 게재됐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 데이비드 케이 존스턴은 뉴스위크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시라큐스대에서 고대의 상업·조세·부동산법을 가르친다. 근저로 ‘확대되는 미국 내 격차의 위험(Divided: The Perils of Our Growing Inequality)’이 있다. ]

글=데이비드 케이 존스톤 뉴스위크 기자,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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