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2년을 함께 뛴 「동신건설」장사장팀|6·25 전우가 차린『6중대』건설회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25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들이 다시 모여 건설회사를 차렸다.
당시 중대장은 사장이 되었고 소대장은 감사로, 선임하사는 관리부장, 통신병은 안전관리반장, 그리고 보급계 사병은 창고관리장으로 일하고 있다. 왕년의 용사들이 철모 대신 안전헬맷을 쓰고 건설현장을 뛰고있다.
서울 삼성동1 동신건설산업의 장지을 사장(54·예비역 중령·육사 10기생)과 김운기 감사(55), 조규호 관리부장(55), 안승수 안전관리반장(53), 홍원주 창고관리장(61)은 6 25때 백마고지 281고지·낙타고지등에서 함께 싸웠던 보병 9사단 28연대 2대대 6중대 장병들이다.
『일백 65명의 6중대 병사 가운데 현재 연락이 닿는 전우는 13명뿐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다섯명이 다시 한곳에 모였습니다. 아침 저녁 전우들의 얼굴만 보아도 기운이 납니다. 업계에서는 6중대끼리 모였다고「6중대 회사」라고도 부르고 있지요』
장사장의 목소리는 281고지 전투에서 중대원을 독전하던 칼칼한 금속성이다.
장지을중위가 이끄는 6중대는 51년 12월 24일 밤 철원평야의 중심부 281고지에서 중공군 3백 60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최대의 격전이 시작된 24일 하오 5시.
『중공군 2개 연대 병력이 새까맣게 줄을 지어 몰려오고 있다.』는 첫 보고를 했던 장본인이 지금 감사를 맡고 있는 2소대장 김운기 소위였고 우왕좌왕하는 신병들을 독전, 숭전의 기틀을 잡아주었던 부대 선임하사도 특무상사였던 조규호 관리부장.
또 전·후방의 신속한 연락을 담당했던 통신병은 지금의 안전관리반장인 안승수 병장이었다.
주먹밥을 팽개친 병사들은 재빨리 호 속으로 몸을 날렸다.
밤을 꼬박새우며 치른 12시간 동안의 격렬한 접전으로 경기관총 총신이 벌겋게 달구어졌다.
『너무 다급해 탄약수에게 소변을 보게해 총신을 식혔습니다』 기관총 사수였던 조규호 부장의 설명이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8명이 전사하고 26명이 부상했지만 워낙 엄청난 전과를 올려 당시 28연대장이었던 이주일 대령(전감사원장)이 직접 위스키 한병을 들고 25일 아침 고지까지 올라와 장병들을 격려했다.
53년 휴전이 되면서 중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영원히 잊혀질뻔했던 중대원들이 다시 모이게된 것은 5·16후 중령으로 예편한 장중대장이 서울시청 주택국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어 연락이 닿고서부터.
『신문에 나는 이름 석자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도 정말 무서운 것을 알았습니다. 신문에 난 시청인사발령을 보고 다음날 조상사와 안병장이 찾아왔더군요. 모두 내가 죽은 줄 알았다며 서로 부등켜 안고 한참 울었습니다.』
56년 대위로 제대했던 김소대장은 방직회사에 근무하면서 시청에 민원이 있어 들렸다가 복도에서「장중대장」을 만났다.
가장 나이가 많지만 군대계급이 낮았던 홍씨는 제대후 지난78년까지 경기도 고양에서 벽돌공장을 했었다. 벽돌납품관계로 이 회사에 상담을 하러갔다가 왕년의 선임하사와 중대장소대장을 차례로 만났다. 그날로 당강 벽돌공장을 집어치우고 「6중대회사」에 신병으로 들어왔다.
홍씨는 입사하자마자 손수만든 금속탐지기로 공사장을 돌면서 못조각과 철근토막을 주워 모으는 알뜰함을 보여 역시「보급계」라는 말을 듣는다.
장사장과 함께 12년전 회사 창설 맴버로 출발한 조부장은 지금도 장사장을 『중대장님』 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하며 사장을 그림자 처럼 따라 다녀 주위에선「사장과 함께 죽을 사람」으로 소문나있다.
『6중대의 대훈이「의리」와「믿음」이였읍니다. 저희들이 다른 직장을 그만두고 모인것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이들은 매월 각 가정을 돌면서「6중대회식」을 주선, 회사 안에서 하지 못하는 의견도 자유롭게 교환한다.
「회사밖의이사회」같은 모임이다. 각자가 맡은 부서의 어려움과 사원들 개개인의 고충을 중대장에게 보고, 즉각 해결하기도한다.
12년전 설립한 이 회사는 전국 5백여개의 종합건설회사 중 작년연말 현재 도급랭킹이 1백 58위로 중상급. 사원만도 1백여명이고 그동안 서울과 지방에서 수주 맡은 크고 작은 건축 토목공사중 지난해 착공한 부산 다대지구 부지조성공사(12만평)는 공사도급액이 20억원이나 되며 82년에는 충남천원군청사를 준공하기도 했다.
장사장은『단돈 5배만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이정도로 성장한 것도 적은 봉급 (30만∼50만원)에도 불평하지 않고 사심없이 뛰어준 전우들의 도움이 컸다』 고 흐뭇해했다. <김재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