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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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단오절은 백화점 광고에서나 볼 수 있다. 한 시절 연중 가장 큰 명일로 지내던 시속이 무색하다.
옛사람들이 음력5월5일을 천중가절로 여긴 데는 이유가 있다. 1년 중 가장 생기 발랄한 계절에 이른바 양삭 (1, 3, 5, 7, 9)인 「5」자가 겹친 날이 바로 단오다.
음양설로는 3월3일, 5월5일, 9월9일, 모두 범상한 날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음력5월은 신록이 눈부시고 자연은 생명감에 넘쳐있는 때다. 옛 선비의 시조 한 수가 없을 수 없다.
-천중 단오 일에 옥호(옥호)에 술을 넣고/녹음방초에 백마로 돌아드니/유지의 여랑 추천(여랑 추천=그네) 이 탕자정을 돋우더라.
그네뛰기, 편싸움, 씨름, 태껸, 변사, 탈춤 등은 모두 단오절의 민속놀이 들이다. 이날만은 남자들이 웃도리를 벗어 던지고 씨름판에 나와도, 여자들이 치마폭에 바람을 넣고 그네를 타도 흠될 것이 없다.
이런 풍속은 조선왕조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아무리 격식과 법도를 찾는 유교사회일 망정 때로는 이처럼 옷고름을 풀어놓는 해방감을 만끽할 기회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생활에 신선 감을 보태주는 정신적 활력소의 구실도 했을 것 같다. 개인이나 그 사회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있을 법한 일이다.
「파스칼」의 『팡세』 (명상록)를 보면 임금 노릇도 놀이가 없었으면 지루했을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단오절의 민속중엔 양기를 돋우는 풍습도 있었다. 창포와 쑥으로 노리개를 만들어 차고 다닌다. 특히 창포를 목욕물에 담가 그 향긋한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도 했다.
중국사람들의 단오풍습도 먹고 노는 일이었다. 이날이면 갈잎에 싸서 찐밥(직)을 먹고 창포 주를 마시며 난초 물에 목욕도 한다. 햇쑥으로 만든 범을 대문에 걸어놓기도 했다. 들에서는 나물 캐기, 강에서는 나룻배 경주. 모두단오 풍속이다.
우리 나라의 단오절행사는 아득히 신라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오절의 우리말 명칭도 이때 벌써「수리」또는「수뢰」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육당(최남선)같은 사학자는 마한시대의 5월 대제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필경 북방민족들에 음력5월 무렵은 우리 나라 절기로 치면 한창 봄이 무르익을 때다. 양화일기, 봄의 약동을 함께 즐기는 명일로 단오를 지냈던 것 같다.
마침 우리 나라는 이때면 모심기 등 농사일에 쫓겨 부지깽이도 귀한 시절이다. 그 겨를에 모처럼 일손도 놓고, 다양한 놀이를 통해 심신의 피로도 덜자는 날이 단오가 된 것 같다.
오늘의 생활리듬은 그럴 마음의 여유도 주지 않지만, 그럴수록 옛사람들의 여유와 풍류에 향수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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