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부부싸움|박금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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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부싸움이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도 약간은 퇴색되어 가는 느낌이다. 사람과 정이 앞서는 부부간에 이해와 타협도 아랑곳없이 서로가 자기주장만을 고수하는 자존심시대로 된 것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소산일까.
나는 가끔 영광(?)스럽게도 부부싸움에 초대받아 긴급출동을 자주 하는 편이다. 며칠 전에도 밤중에 걸려온 전화벨 소리에 눈을 비비면서 짜증스런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쌍방의 주장이 모두 옳았다고 수긍하면서 편견이 아닌 정당한 판결을 해야하는 난감한 입장에서 좋다는 말은 다 골라 화해의 기점을 모색해 봤지만 「쇠귀에 경읽기」였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되어온 무조건 여자가 참아야만 했던 미덕의 시대는 이미 사라지고 위아래가 없는 부부, 앞뒤가 없는 부부로 탈바꿈하면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똑똑한 여자들 앞에 고리타분한 남존여비사상이 통할 리가 있을까.
요즘 이혼율의 1위가 성격 차이라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결혼은 형벌이라는 말이 있다. 환경과 습관이 다르고 성격과 사상이 다른 남남끼리 만나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기란 퍽 어려운 일…. 그래서 특별한 궁합 l백점이 아닌 이상 부부싸움을 안해본 사람은 극히 소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병아리는 싸우면서 자란다고 했다. 때로는 부부싸움이 행복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애교의 묘미도 필요하겠지만 즐겨서는 안될 일이다.
한쪽에서 날고 뛰면 한쪽에선 바보처럼 있다가 화가 가라앉은 뒤에 극히 나지막한 소리로 『여보, 그래서야 되겠소』하고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손뼉이 마주치지 않아서 좋고, 문제의 해결도 찾아 좋고, 존경을 받게 되니 좋지 않을까.
바라건대 대범하고 아량이 있다는 남자쪽에서 슬쩍 패자가 되어 종말의 승자가 되어준다면, 그 포용력에 도취되어 더욱 지아비의 섬김에 평생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중에 서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부부가 되지 않을까. <서울 구로구 개봉2동262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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