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反美'아닙니다, 아니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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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나에 대해 궁금해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11일 난생 처음 미국 땅을 밟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첫 공식 행사인 뉴욕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류 사회의 일원이 아닌 데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인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왔고 이라크 파병도 그 일환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의 성향을 놓고) 언론에서 상반된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번 방미를 통해 이런 혼란을 말끔히 해소하겠다"고 盧대통령은 교민들 앞에서 다짐했다. '나는 반미(反美)주의자가 아닙니다, 아니고요'를 듣는 듯했다.

촛불 시위와 반미 성향이 높은 네티즌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됐다고 생각하던 교민들은 盧대통령의 말에 큰 박수를 보냈다. 고국의 반미 시위로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컸던 그들이다. 냉엄한 정치외교의 현실을 盧대통령이 직시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날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만찬 행사에서 그는 원고에도 없던 말을 했다. "여러 번 말했는데도 아직 나를 못 믿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 자리에서 내 생각을 간단하게 다시 표현하고자 한다. 만약 53년 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미주의자로 잘못 심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씻어내는 것을 이번 방미의 최대 목적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미국과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다"며 '자주 외교'를 외치던 노무현 대신 현실주의자 노무현이 거기 있었다.

심상복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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