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왜 미래 비전·생존전략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미래는 현재에 의해 결정된다. 미래의 삶을 올바로 설계하고 그 목적지에 정확히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 자기 자리를 확인하고 좌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자기 자리를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현자를 찾아가기도 하고, 온갖 예언들에 귀를 세우기도 한다. 사주나 점을 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래를 알고 싶다기보다 현재 자기 자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 자기 자리 알기가 너무 어려워

한 개인도 이럴진대, 다수가 모여 사는 공동체의 자기 자리를 알기란 더욱 어렵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의 좌표를 정확히 아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한 나라의 살림살이가 다른 나라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우리를 바로 아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나라를 가운데 놓고 세상을 보지만, 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또는 인도.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를 가운데 놓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변방에 있는 나라다.

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고 국제질서 속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비전과 생존 및 발전전략이 필요한데, 무엇이 진정 그 나라의 미래적 삶을 풍요롭게 할 비전이며 전략인지는 보통 사람들은 잘 알 수도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의정치를 채택하고 전문가들을 길러내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게 한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을 두고 국회의원을 뽑고 전문가들을 길러내는 이유는 우선 대한민국과 한국민이 미래에 인간답고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국민의 대표자들과 이 땅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은 국민에게 미래 한국의 비전과 생존전략 및 발전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정권을 보건대, 그 중요한 기간에 정치세력은 패거리를 지어 권력투쟁과 자기 이익 챙기기에 허송세월하였고, 사회구성원들은 각자 자기 이익만을 주장하며 지금까지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준비 없던 정부는 사회갈등을 조정할 능력도 부족했고, 결단을 내릴 비전은 아예 가지지도 못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앞장서 미래에 대한 큰 방향을 제시하고, 갈수록 국제의존도가 높아지는 삶의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변방에서 탈출하여 생존하고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참다운 비전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고, 공동체 전체의 역량을 통합하여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골목싸움 같은 정치를 해서도 안 되고, 국내용 선수들만 가지고 국제경기의 룰을 탓해도 안 되며, 정보가 부족한 대중을 선동하여 민족주의의 폐쇄성 속에 가두어도 안 된다.

그러자면 먼저 현재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세계의 주류적 흐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하고, 다양한 국제문화 속에서 우리 국민이 능동적이고 세련되게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이런 것을 가능케 할 우리의 성장엔진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선진 강대국의 질주 속에서 대한민국이 포위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어떻게 확보하며, 다문화적인 삶의 구도 속에서 세계적으로 고립된 우리 언어를 어떻게 할 것이며, 지식.정보와 기술의 세계적인 경쟁을 우리 국민이 어떻게 따라잡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지 그 방책을 세워야 한다.

***개혁, 인기.지지율에 집착말길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육.노동.정치분야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목전의 인기나 지지율에 집착하지 말고 정직하게 국민을 설득하여 신뢰를 확보하고, 필요하면 헌법이 부여한 권한으로 특단의 결단도 해야 한다.

국가의 비전이나 전략을 제시하는 작업이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언론도 결과만 기다려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병행하여 주체적으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길을 열어가는 것이 필요하고, 지식인들도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가장 주체적이어야 할 것은 정부다. 미래적 비전과 생존전략을 내놓는 것보다 정부의 더한 기능은 없다. 대통령 어젠다를 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