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데이터] 저유가 얼마나 오래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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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제 유가 급락은 한순간의 회오리일까. 요즘 경제 정책담당자나 기업 경영자, 투자자 모두가 품고 있는 의문이다. 일부 원유 트레이더는 ‘눈 딱 감고 1년만 버티면 오른다’며 원유를 사재기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1985년 11월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값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까지 WTI 값이 69%(31.82→9.75달러)나 추락했다. 요즘 유가 하락 폭과 엇비슷하다. WTI 값은 지난해 6월 이후 58% 남짓 떨어졌다.

 80년대 중반 당시 전문가들은 대부분 저유가 시대가 오래 가지는 못할 것으로 봤다. 그들의 주요 근거는 “원유 매장량은 곧 고갈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저유가 시대는 90년까지 약 4년 동안 이어졌다. 원인은 공급 과잉이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도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대거 늘렸다. 또 석유 파동이 미국 알래스카 유전 개발을 부추겼다. 최근 고유가 시대가 미국 셰일 가스와 원유 개발을 자극했듯이 말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13일 펴낸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사이에 미국의 원유 생산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올해 하루 생산량은 평균 930만 배럴에 이르고 내년엔 950만 배럴에 달한다는 얘기다.

 이러니 한번 늘어난 원유 공급은 어지간해선 줄이기 힘들다. 유가 하락에도 공급이 탄력적으로 줄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80년대 저유가 시대가 20여 년 만에 재연될 기미가 엿보인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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