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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숨막히는 학교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 S고 김모교사(45)는 이제 교단에 선지도 20년이 가까워 오나 요즘 부쩍 늘어난 주름살과 함께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곤 한다.
『세태 탓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이기적인 풍조에 각박할 정도로 집착하는 것을 보면 정말 정떨어질 때가 있읍니다.
또 학교전체가 명문대학에 합격자 한 명이라도 더 내려고 미친 듯이 치달려 나갈 때나 여기저기서 교사의 질이 떨어져가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데「공부」는 안하고 교직을 단지「먹고살기 위한 직업」으로서 만족하려는 동료교사들을 볼 땐 의욕이 없어지곤 해요.』
서울 K고 L모 교사(42)는 사제간의 메마른 정을 얘기한다.『현재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의 결핍입니다. 극히 인간적인 문제에서도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상담 자체가 거부되고 있어요.』
오늘날 10대 교육에서 근본적으로「교육의 방향」이 잘못 잡혀있다는 것은 다수 현장교사들의 지적이다.
『네가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냐』하고 물었을 때 흔히『손에 흙이나 기름 묻히지 않고 좋은 대우받으며 살려는 것』이란 공공연한 반응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우등생들에게서 두드러지며 공익의 개념이나「남을 돌본다」는 가치의식이 심히 결여돼 있다고 교사들은 지적한다.
한 교사는, 자신의 넉넉한 것을 부족한 사람에게 베풀려는 삶의 자세를 교육이 심어주지 못할때 맞이할 낭패를 우려하면서 이 점은 오늘날 이 사회가 교육에 끼치는 심각한 해독중의 하나라고 풀이했다.
이 나라의 10대 교육을 왜곡하고 더욱 숨막히게 하는 것은 역시 입시위주의 교육이다.
「인간교육」을 외치는 목청은 높으나 현장에선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교사들의 말.
고등학교의 경우, 실업계는 좀 다르겠지만 교육의 대상이「대학 갈 수 있는 학생들 위주로 돼있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학을 갈 수 있는「소수」만이 혜택을 볼뿐 대학에 못 가는「다수」는 교육자체에서 부당하게 소외되는 결과를 빚고있다.
한 학생의식 조사결과를 보면「현재 우리사회에선 사람을 평가하는데 개개인의 능력보다 일류학교 출신인가를 더 중시하느냐」는 물음에 84.8%의 학생이「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이러한 풍조 속에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겪는 좌절감은 매우 심각하다. 실제로 서울시 교위의 조사에 따르면「불량학생」의 대부분이 학업성적 부진아로서 면학 의지가 결여된 자라고 지적한바 있다.
여기에 부모의 출세위주의 교육관이 가세, 학생들의 심리적 억압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 다수 극성부모들은 신흥 명문고를 찾아 강남으로 대량 이주해 집값과 땅값을 올리는데 일조 했다는 얘기도 돌고있다.
이렇듯 다수 학생들의 기를 죽이며 교육현장을 황폐화하는데 학교가 한 몫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칭 일류대학 합격자를 한 명이라도 더 내어 학교명예를 빛내고 신흥 명문고로 부상하기 위해 학생의 진로를 본인의 뜻과 달리 강제하는 것이다.
서울 M여고 박모교사(40)는『현재 웬만한 학교에선 고3은 물론 1, 2학년도 밤9, 10시까지 붙들어놓고 입시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과외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모양만을 바꿨을 뿐』이라고 꼬집는다. 오직 입시만의「완전장악」이 있을 뿐 정서도, 독서도, 마음의 여유도 자리할 데가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학습에 참여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정부도, 사회도, 가정도, 학교도 함께「교육의 방향」을 깊이 생각해볼 때다. 다수의 10대가 교육의 이름으로 교육에서 소외되는 이 횡포는 언제까지 허용될 것인가. 이 사회와 가정은 언제까지 비교육적인 해독을 일방적으로 학교에 뿌리면서 도리어 책임만을 물을 것인가. 모두가「교육의 근본」에 서서 그 회복을 다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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