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진화의 함수관계] 2. 생물들의 기생충 퇴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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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기생충에 감염된 생물은 심하면 죽고,적어도 양분을 빼앗겨 몸이 약해지는 등의 피해를 입는다.

이에 반응해 생물들은 기생충을 막아내는 방법을 발달시켰다.

말벌 중에 집단 생활을 하는 것이 있는데, 이들은 저녁이면 수천마리가 모여 날갯짓을 해서 열을 내고 서로의 몸을 덥혀준다.

그러나 기생파리에게 공격 당하면 무리에 끼지 않고 한데 나가 추운 곳에서 밤을 지낸다. 기생파리 애벌레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무리지어 있는 따뜻한 곳에서 말벌이 지내면, 몸 속의 기생파리 애벌레는 10일 만에 어른이 돼 몸을 뚫고 나와서는 다른 말벌의 몸 안에 알을 낳는다. 그러나 말벌이 추운 곳에 있을 때는 애벌레가 자라는 속도가 훨씬 늦춰진다.

게다가 말벌 자신도 오래 살지 못해 기생파리 애벌레는 결국 어른이 되기 전에 말벌과 함께 죽고 만다. 감염된 말벌이 몸바쳐 무리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하는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정글에 사는 입꾼개미(일명 가위개미)는 나뭇잎을 잘라 가져와서는 그 위에 곰팡이와 버섯을 키워 먹는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개미'로도 알려져 있다.

입꾼개미의 일개미에는 몸집이 큰 것과 아주 작은 것 두종류가 있다. 큰 개미가 나뭇잎을 나를 때 작은 개미는 잎 위에 올라탄다.

짐을 옮기는 동안 개미 몸속에 알을 까는 기생파리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작은 개미가 파수꾼 노릇을 하는 것이다. 기생충이 개미 사회에서 역할 분담이 생기도록 만든 사례다.

스스로 기생충약을 먹는 생물도 있다. 호랑나비 중 특수한 종류의 애벌레다. 이들에게는 몸을 파먹는 치명적인 기생등에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 소재) 리처드 카반(곤충학) 교수는 이 애벌레를 기생등에에 감염시키고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다. 그랬더니 평소에는 입도 대지 않는 독미나리를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벌레의 항문으로 기생충이 기어나왔다. 독성을 못견디고 숙주의 몸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야생 침팬지도 창자에 기생충이 생기면 평소에 안먹던 종류의 나뭇잎을 먹는데, 이는 복통도 덜어주고 기생충을 없애주는 작용을 한다는 연구가 있다.

나비나 나방의 고치는 대부분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살짝 건드려도 좌우로 몹시 흔들린다. 기생벌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이렇게 흔들리면 기생벌이 침을 꽂기가 힘들어 고치 안에 알을 낳기 어렵다.

식물들 역시 침입자를 퇴치하는 수단을 갖고 있다. 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 특수한 화학물질을 내뿜는다. 이는 말벌에게 '여기 먹이가 있다'는 신호로 작용해 말벌이 애벌레를 잡아가도록 한다. 동시에 잎의 소화를 방해하는 물질을 내뿜어 애벌레가 소화불량에 걸리게도 한다.

암컷들이 기생충에 강한,튼튼한 수컷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덴마크 출신의 생물학자 안더르스 묄러 박사는 제비 중 한 종류의 짝짓기 행태를 관찰했다.

이 종의 암컷은 꼬리가 길고, 또 갈라진 양쪽 꼬리의 길이와 모양이 완전히 대칭인 수컷과 짝짓기를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이렇게 꼬리가 길고 대칭인 수컷은 기생충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렇지 않은 수컷보다 건강하고 병에 잘 견뎌 오래 살았다.

묄러 박사는 "건강한 수컷의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제비 암컷들이 꼬리를 보고 수컷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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