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어로·대륙붕 협력|황해 끼고 있어 양국 이해 겹쳐|직접 대좌 없었지만 서로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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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과 중공은 황해바다를 같이 끼고 있기 때문에 어로나 대륙붕 개발 문제에선 이해가 바로 겹친다. 직접 대좌는 없었지만 한·중공 양측은 이미 묵시리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약정도 서로 지키고 있다. 어업문제에선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여러 번 직접대화의 계기가 있었으나 아직 중공 측이 거부자세를 풀지 않고 있는 어로와 대륙붕 개발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현안과 교섭경과를 보자.

<보이지 않는 약정도>

<어로 분쟁> 몇 년 전만 해도 중공 측이 한국 어선을 나포하는 등의 분쟁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로 긴급 피난 때 도와 주고 있다.
5∼6년 전엔 한국 어선이 중공의 영해나 그들이 선포한 소위 「어로금지구역」에 들어가 조업했다느니 말썽이 많았다. 한국의 어로기술이 중공보다 앞섰기 때문에 우리 쪽이 주로 중공 측에 가서 잡는 입장이었다.
그 때문에 양국은 정부 레벨의 성명을 통해 공방전을 벌이곤 했다.
예를 들어 76년 6월20일 한국어선 2척과 그 어부들이 중공에 납치됐을 때와 77년5월 소흑산도 서남쪽 공해상에서 무장선박 5, 6척의 호외를 받은 중공 어선 40여 척이 한국 어선의 조업을 방해하고 어구를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은 외무부 대변인을 통해 중공 정부에 대해 즉각 성명을 발표, 『조업질서 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양측 「관계 당국자간의 약정」을 적절한 경로를 통해 마련하자』고 제의한 것 등이 그 골자였다.
특기할 것은 정부가 중공을 상대로 「약정」 체결을 처음으로 제기한 일이다. 이념을 초월한 모든 국가와의 협력관계를 표방한 「6·23 선언」 후 중공을 과거 「적성국가」 분류에서 해제, 어떤 형태로든 관계개선을 모색해온 정부로서는 까놓고 얘기하자면 어로분쟁도 하나의 협력관계의 계기로 전환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외무 당국자들은 우리 어선이 나포될 때마다 중공 당국이 그들 나름의 해당조사만 끝내면 우리어선·어부에 대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돌려 보내주는 점을 매우 의미 있는 「사인」으로까지 주목 해온 게 사실이었다.
이 같은 한국의 거듭된 양국 간의 약정 제의에 대해 중공은 일체 반응을 나타내지 않아 이 방면의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다만 중공은 75년 일본과 어업협정을 체결, 「일·중공 어업협정선」을 황해와 동지나 해상에 설정했다.

<몇 년 전까지도 분쟁>
이 협정선은 일종의 군사경계선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나라 서쪽으로 보호구 및 휴어구 등 어로 금지구역을 만들어 업종별 투입 어선과 사용 어구·어기를 규제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로 분쟁은 거의 없다는 게 수산 당국의 얘기다. 오히려 해상조건이 급작히 나빠질 수 있는 11월부터 4월까지 사이에 중공 어선이 태풍·풍랑을 만나면 한국 영해로 들어와 연안으로 긴급피난, 82년 한해만도 연1천5백 척에 이르렀고 이들에 대해 요청이 있을 때는 식수·식량 제공까지 하는 형편이다. 한국어선이 중공 쪽에 긴급 피난하는 일도 물론 있고.

<대륙붕 문제>
한국과 중공 사이의 바다, 즉 황해는 수심 2백m가 안 되는 대륙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바다 밑의 지질 구조는 우리측 3분의1 가량이 모래로, 중공측 3분의 2쫌이 점토층으로 덮여 있다.
바로 이 같은 해저지형 때문에 우리정부가 지난 70년5월30일 대륙붕 선언을 통해 설정한 대륙붕 광구의 경계문제가 한때 한·중공간의 미묘한 문제로 등장했었다.
73년 초 중공은 우리측의 유전개발 계획에 대해 「중공의 주권 침범」이라는 비난을 해온 적이 있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중공은 광구 경계선 설정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처음으로 중공에 대해 정식호칭을 사용, 『중화인민공화국과 어느 때라도 대륙붕 분할선 확정에 관해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제의를 했었으나 중공은 『해상의 주권과 관할권은 연안국의 경제사정과 기술조건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을 뿐 협상에 응해 오지 않아 양국의 대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당시 우리측이 설정했던 대륙붕 분할선의 기준은 국제관례상 일반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등거리 중간선의 원칙이었고 그 후 아직까지 중공이 이렇다할 반론이나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을 뚜렷이 내세우지 않은 것은 정식 국교가 없는 양국 간의 관계에서 우리측의 기준을 중공도 은연중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난 81년10윌 제주도 남쪽 한·일 공동개발 광구 제7소구에서 우리측 조광권자인 코암(KOAM)사가 약 두 달간에 걸쳐 시추작업을 벌였을 때 중공도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의 시추지점 바로 이웃에서 시추작업을 벌여 주목을 끌었었다.
코암사가 택했던 시추지점은 한·일 공동개발 광구와 중공과의 경계선에 바싹 붙어 있는 지점이었고 중공이 택한 시추지점 역시 경계선에 인접해 있는 지점이라 우리측 시추지점과 중공측 시추지점과의 거리는 불과 12km 남짓이었다.

<중공 광구선 불명확>
만일 우리와 중공 어느 한 쪽이라도 경계선과 인접한 지역에서 유전을 발견케 된다면 이 또한 매우 미묘한 문제가 된다. 해상에 임의로 그어진 선을 따라 바다 밑 유전이 분포되어 있을 리는 만무고 그 유전은 필경 양측의 대륙붕에 걸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우에는 국제관례상 양국의 대륙붕에 묻혀있는 원유매장량을 측정, 생산된 원유를 그 비례에 따라 나누기로 하고 공동생산 방식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륙붕에서의 시추결과는 한국과 중공을 의외로 빨리 마주앉게 할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한남규·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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