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의 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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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머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가면 지금도 부엌에 커다란 가마솥이 위엄 있게 걸려있다. 예나 이제나 어머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있는 그 솥이 지난날엔 나의 미움을 꽤나 받았었다.
늘 거추장스럽게 여겨졌고 떼어냈으면 싶었던 그 솥이었지만 어머님의 가마솥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셔서 솥 밑 그을음을 헝겊에 싸서 들기름을 적셔 자주 단 솥전과 뚜껑에 문질러 까만 공단처럼 반드르르 윤기나게 질을 내라 하셨고 설거지하고 나서는 언제나 초사흘 달처럼 뚜껑을 빠꼼히 열어 놓으라 하셨는데 그건 공기가 통해 녹이 슬지 않게 함이셨다.
몇 년 전 우리가 시내로 이사오면서 굳이 고향에 계시겠다는 어머님의 불편을 덜어 드리기 위해 부엌개량을 할 때 가마솥은 그냥 둔 채 가마솥에서 해방된 나는 주방용 전기제품을 모조리 사놓고 식사준비를 하여 문명이기의 고마움도 느꼈지만 때로는 가마솥에 밥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는 양재기에 된장을 빡빡하게 만들어 밥 위에 얹으면 밥이 끓으면서 밥물이 넘어 들어가 적당하게 된장이 익고, 차곡차곡 양념에 잰 깻잎도 찌고, 콩가루 묻힌 파, 부추. 우엉뿌리, 밀가루 묻힌 가지, 풋고추, 그리고 콩나물, 호박잎 등을 삼베보자기 깔고 얹으면 밥이 다 됨과 동시에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간장에 무치는 푸짐한 반찬들.
그런데 지금은 좁은 전기밥솥에 그런 것들 얹을 수 없어 아쉽고 여러 남비에 지지고 볶고 튀겨야하는 번거로움도 번거로움이지만 오랫동안 시골생활에서 구수하고 담박한 그 토속적인 음식 맛에 길들여진 내 입은 도무지 요즘의 느끼하고 들큰한 음식에 익숙해지질 않는다. 석쇠에 굽지 않고 굳이 솥을 달구어 살짝살짝 김 구워내던 가마솥, 엿고을때 솥뚜껑 절반쯤 뒤집어 놓고 엿밥자루 얹어 눌러 짜던 가마솥, 누룽지를 살짝 눌리는 어머님의 지혜를 못 배우고 언제나 밑바닥 가득 눌려 자주 걱정을 듣게 했던 가마솥. 어느 날 건망증 탓으로 빈 솥에 자그마치 짚 일곱 단을 때도 끄떡없던 가마솥, 그 가마솥이 자꾸 좋아지는 요즈음이다.
박순혜<경북상주군상주읍인봉동 82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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