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기 '희망 보고서'] (주)창성 배창환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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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의 배창환(55.사진) 회장은 구멍가게부터 시작한 일반 중소기업인과는 출발이 다르다. 옛 국제증권(1992년 삼성증권에 인수) 배현규(80) 회장의 외아들이어서다. 1980년 비철금속 소재기업인 창성을 설립할 때부터 부친 때문에 덕도 봤지만 걸림돌도 많았다. 부친까지도 창업 초기엔 '가업인 금융업을 마다하고 무모하게 제조업에 뛰어든' 아들을 나무랬다.

하지만 그 후 25년, 배 회장은 회사를 세계적인 중소기업으로 일궜다. 창성은 지난해 6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자성 코어(magnetic core) 부문에서는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해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자성 코어는 전기장치가 교류 전력을 직류로 바꿀 때 생기는 손실(노이즈)을 없애 전력 효율을 높이는 부품이다. 90년대 중반까지도 미국 등 선진 업체들이 독과점하던 분야다. 창성은 자성코어 외에도 금속분말 등 부품 기초소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창성 서울 사무소는 건물 이름이 '국제빌딩'으로 부친이 운영하던 국제증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배 회장은 성공비결에 대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재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최고의 자산으로 생각한다"며 "매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돈이 전체 매출의 8%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전 직원의 25%인 72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인데 중소기업으론 드물게 그 중 40명이 석.박사급이다.

배 회장은 학창시절부터 창업을 꿈꿨다. 75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5년을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뒤 30세에 창업에 나섰다.

창업 아이템은 전기.전자제품 회로기판 등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소재인 동(銅) 분말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운영하다 실패한 청동분말제조공장을 인수, 종업원 4명으로 시작해 회사를 5년만에 흑자로 돌렸다.

배 회장은 학창시절부터 가슴에 새겨둔 '기업철학'이 있다. '대기업에 직접 납품을 하지 않는다' '진입장벽이 낮은 사업은 하지 않는다' '기초 소재 산업을 하겠다'는 것들이다. 그래서 선진국이 아니면 힘든 기초 소재산업을 택했다고 한다. 이같은 철학을 갖고 대기업 납품은 5% 수준이면서 전체 매출의 52%를 세계 20여개 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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