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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라지는 결혼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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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의 가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가정도 그 모습을 변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은 사랑과 이해가 없어서는 안 된ㄴ 작은 「나의 울타리」이며 영원한 안식처다. 가정의 새로운 의미는 무엇일까.「가정, 오늘의 의미」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가정의 출발은 결혼이다. 전쟁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를,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를, 결혼할 땐 세 번 기도하라는 경구가 있다.
그 만큼 결혼이 일생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의 결혼이 아니라면 좋은 가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학과 연극뿐만 아니라 인생 그 자체에서의 영원한 테마이기도 한 결혼-. 오늘의 적령기 남녀는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적령기 남녀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결혼관 의식 조사를 해 온 최신덕 교수(이대·사회학)는 2년 전 그동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적령기 남녀의 결혼에 대한 기본 요건을 다음 4가지로 분류했다.
첫 째 사람에 근거한 감정적인 만족, 둘째 장차 갖게 될 사회적 지위나 신분, 셋째 가정의 수입이나 지출에 관련된 경제적 기능, 넷째 장차 자녀양육을 맡게 될 부로로서의 자격 여부 순.
그러나 최 교수는 첫 번째 요건은 이념적 소망에 불과하며 최근에 와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요건이 여성들의 결혼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결혼 동기나 의미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대부분의 적령기 남녀는 심리적 안정과 감정적 만족을 위해 결혼한다고 대답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막상 결혼을 결정할 때 은연중 내세우는 조건들(직업이나 부)이 과연 결혼 후 이념적 소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부모나 당사자들이 말로는 성격과 인품을 내세우지만 막상 결혼을 성사시키는 데는 직위와 돈이 큰 역할을 합니다. 비교적 순수하리라 기대했던 자녀들도 결국엔 부모의 결정을 따르게 되지요.』
오랫동안 중매를 취미겸 업으로 삼아온 이옥자씨(55)는 10여년 동안 수 없이 많은 중매를 서면서 직위와 돈, 그리고 결혼의 함수관계를 체험적으로 확인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와 결혼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장담까지 할 수 있다는 이씨의 말.
40대 주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은 일생을 통한 하나의 사업』이란 말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의 예로 「재클린」이 꼽힌다.
반대로 좋은 신랑감에겐 신부의 지참금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 같은 현대의 결혼관과 함께 결혼을 아예 부정해버리는 젊은이도 많다.
지난 l월 경제기획원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40세 이상의 독신은 2만 7천 5백 40명으로 75년 1만 6천 4백 48명에 비해 67%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81년 단국대 조규연씨가 조사한 결혼의식 조사에 의하면 조사자 가운데 여성의 과반수가 경제적 능력만 있다면 결혼을 안 해도 된다는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어 앞으로 독신이 늘어날 추세를 실감케 한다.
『혼자 살면 고독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고독은 어떤 생활을 하든 느끼게 되는 것 아닙니까. 결혼하려고 해봤으나 결혼에 필요한 조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넘어 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박정순씨(34)는 오늘의 결혼퐁속도가 못 마땅하다고 했다. 때문에 결혼 그 자체를 부정하고 나온다. 경제적 여건만 좋으면 여자가 혼자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
「결혼까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생명의 전화」 토론회에서는 토론자들어 순결 여부, 유부남과의 불륜, 생활능력만 있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엇다는 식의 사고방식, 결혼 자체에 대한 회의 등을 문제점으로 내놓았다.
이처럼 가정은 오늘날 출발하기도 전ㅇ 많은 문제점에 부딪치고 있다.
그러나 정세화 교수(이대 여성문제연구 소장)는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가정의 의미는 결코 약화될 수 없으며 가정이 부정되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결혼을 둘러싼 여러 가지 폐습들이 많지만 가치관의 정립으로 이를 하나하나 고쳐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라는 것.
20여 번의 맞선 끝에 지난해 결혼한 임성희씨(28)는 『그래도 결혼은 어차피 인연인 것 같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 준다.
그동안 좋은 혼처도 많았지만 결국 서로의 합의점을 얻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끼리의 결합이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
결혼까지 번다스러웠던 격식들이 결혼에 대한 회의를 일으키게도 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어른이 되는 하나의 어려운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경험을 털어놓았다.
임씨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주변의 친구들에게 사회적 성취도가 놓은 배우자를 중시하는 타산적인 경향이 없진 않으나 대부분이 자기 수준에 맞는 상대방을 택하는 걸 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그다지 큰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낙관적인 견해를 말한다.
따지고 보면 타산적인 결혼이란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반문도 한다.
결혼에 따르는 극단적인 폐습, 결혼의 부정 등은 현대 사회에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증후군이다. 증후군 때문에 본질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결혼은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 집단의 출발이 아닌가.

<김징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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