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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자신없어…돈에 집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철없는 아들까지 끌어들여 남편을 독살한 여자.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든 김연주씨(39)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태어나 성장했고, 독살범이 되기까지의 인생행로는 어떠했는가.

<출생>
김씨의 고향은 경기도 시흥군 서면(현재광명시 하안동). 광명시중심가에서 2km쯤 떨어진 농촌으로 30여가구가 마을을 이루고있다.
김씨는 마을 본토박이로 대농에 속하는 가정의 1남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 분위기는 전통적인 한국가정으로 부모가 엄격한 편이었지만 막내인 김씨는 특히 할머니의 귀여움을 받았다.
김씨는 4살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심한 곰보가 되었으나 이를 애처롭게 생각한 가족들이 감싸주어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센 소녀로 자라게 됐다.

<학창생활>
고향의 E국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신의 얼굴에 신경을 쓰게돼 가족들이 특별히 보살펴주었지만 이때부터 김씨는 남의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김씨의 이 같은 성격은 안양 A여중에 들어간 뒤 더욱 심해져 친구가 별로 없었고 가끔『학교가 싫어졌다』는 등의 비관적인 말을 했다.
고교때의 성적은 하(下), IQ는 l백정도, 품행은 『책임감이 없고 게으르다』로 평가돼있다.

<처녀시절>
고교를 졸업한 뒤 김씨는 서울 시흥동에 사는 큰언니집에 올라와 더부살이를 했다. 김씨는 용모를 비관한 탓인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김씨는 곰보얼굴을 고민하다 23세가 되던해에 큰언니를 졸라 얼굴 성형수술을 받았고 다음해에 재수술을 받았다.
성형수술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얼굴에 얽은 자국이 뚜렷이 남아 더욱 비관, 외부출입을 거의 끊기도 했었다.

<신앙과 결혼>
김씨의 큰언니는 동생이 혼기를 놓치고 늘 용모를 비관하는 것이 안타까와 종교를 가질 것을 권유, 72년봄부터 「여호와의 증인」신도가 되었다.
김씨는 6개월간 교리학습을 받는동안 신앙에 몰두해 교회일에 적극적으로 참가했고 교우들과도 친분을 넓혔다.
김씨는 신앙을 가진지 6개윌후 큰언니의 소개로 같은 동네에 사는 염필수씨와 만나게 됐다.
당시 D샤프공장 냉동기사로 일하던 염씨도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여서 두사람 사이는 쉽게 가까와졌다.
이들은 사귄지 한달만에 염씨집에서 신도와 친척 몇명이 모인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염씨는 고아로 성장한데다 왼쪽다리 관절염으로 절룩거렸고, 김씨역시 용모를 비관하며 불우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두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애정을 나눌수 있었고 같은 신앙을 가졌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가정생활>
신체적인 결함을 신앙으로 극복, 부부를 이룬 두 사람은 처음 3∼4년 동안은 주위에서 「잉꼬부부」라는 소문을 들을 정도로 정답게 살았다.
그러나 74년 겨울 염씨가 관절염이 재발돼 직장을 퇴직하자 김씨는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화장품 외판원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부부관계가 어긋나는 궤도를 달리게 됐다. 즉 남편이 집안살림을 꾸려나가고 아내가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역할이 바뀐 것이다.
김씨는 화장품대리점을 차린뒤 남자교제를 활발히 했는데 낯선 남자와 탁구장에도 가고 낚시터에도 동행했었다. 남편 염씨는 김씨가 화장품대리점 관리인으로 채용했단 박모씨(39)와도 가깝게 지내자 이를 눈치채고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도 그러리라 믿는다』며 애정을 애써 강조하기도 했었다는 것.

<외부활동>
김씨는 화장픔외판원을 시작하면서 부터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보였고 장사수완도 대단했다.
김씨와 만났던 사람들은 김씨가 외모에 비해 융통성이 있고 특히 화술이 뛰어나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외판원 당시엔 점심값을 아끼겠다며 라면을 사들고 다니며 단골손님집에서 끓여먹는등 돈에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주위 사람들은 김씨가 돈에 대해 배포가 대단해 『세상돈을 모두 내돈으로 만들수 있다』고 호언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김씨를 상대했던 경찰은 김씨가 자신의 용모에 대한 열등감을 재산으로 보상하려고 바둥거리다 좌절당하자 이 같은 잔인한 살인극을 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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