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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콤플렉스와 미국 맹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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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어떤 상황에서건 극단적 생각은 극단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21세기 미국에 관해 무조건 좋은 나라다, 나쁜 나라다, 친미가 옳다, 반미가 옳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 이분법적 사고방식도 극단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개개인의 특정한 생각은 자신의 삶에서 얻게 된 경험.지식, 타고난 성향, 자라온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물이다. 따라서 어떤 사안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식의 생각은 많은 오류와 한계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자랑하며 세계적인 의.과학계 석학들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 의료에 대한 의견도 개인적 체험에 의해 판이하게 양분된다.

미국의 초일류 병원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12년 전 도미했던 O씨(41). 의료보험에 채 가입하기 전에 그만 폐렴에 걸려 한 달간 입원했다. 세계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극진한 치료를 받고 완쾌한 그녀에게 청구된 의료비는 5만 달러(당시 한화 4000만원). 신접살림을 차리기 위해 준비해 갔던 돈을 병원비로 모두 날려야 했다. 그녀는 양질의 값비싼 미국 의료제도에 고개를 젓는다.

반면 국내에서 긴긴 기다림 끝에 불친절한 의료진의 짧은 진료를 받아야 했던 K씨(61). 한 달간 미국에 머물면서 고질병이었던 귀의 이상을 수술받으면서 미국 의료에 대해 "200% 만족한다"는 말을 한다. 부자였던 그는 병원에서 비싸지만 황제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돈 주고도 원하는 때, 원하는 명의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식 의료 시스템에 불만이 많다.

미국은 군사.경제 등 누가 뭐래도 세계 최강국이다.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강한 만큼 배울 점 또한 많을 것이다. 반면 카트리나 재해에서 드러나듯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등 극심하게 어두운 사회 측면이 공존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가 이처럼 복잡하니 미국에 대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제삼자로서 우리는 미국의 양지와 음지를 파악.분석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미국에 대해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가 말하듯, 혹시나 자신이 미국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진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정신적.신체적으로 열등한 점이 있고 또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게 콤플렉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콤플렉스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인격이 형성되고 사회적 발전도 있다. 하지만 콤플렉스가 너무 강하면 지나친 우월감과 욕망, 우울.성급.격정 등에 빠져 남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 맹신주의에 빠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배고프던 시절의 우리와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을 자랑하는 미국만을 떠올리는 콤플렉스를 가진 게 아닐까.

상대방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해 자신의 생각을 조율해 적절하게 활용하는 자세야말로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피해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