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수 기자의 학창시절]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우는 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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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줄게~."

회사 일을 제때 마무리하지 못하고 허덕이다 밤늦게 퇴근하러 올라탄 택시 안에서 들려온 유행가 가사입니다. 남진의 '둥지'라는 곡인데, 이 가사가 어찌 그리 마음에 와 닿던지 저도 모르게 "와, 좋겠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와 택시 기사님도 저도 둘다 당황했었답니다.

안팎으로 치이며 사는 각박한 요즘, 누구나 가슴 한켠엔 '나도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고 있지요. 현실 속에서 이런 우렁각시를 찾아본다면, 단연 학부모가 아닐까 합니다. "넌 그냥 공부만 해, 다 내가 해줄게~"로 개사를 한다면 학부모송으로 딱 들어맞지 않을까요.
취재를 하다보면 아이들은 정말 책상 앞에 앉아 딱 공부만 하고, 부모님이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음식 해주고, 옷과 준비물 챙겨주고, 방 청소 해주는 건 일도 아니고, 학교와 학원도 차로 모셔다 주고, 갖가지 짜증과 신경질을 받아주는 것까지 부모님의 몫이더군요. "공부만 잘 해라"고 다독이면서요.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진짜 중요한 공부가 뭘까요. 성적은 꽤 높지만, 엄마 없을 때 냉장고에서 있는 반찬 꺼내고 국 데워서 밥 챙겨 먹을 줄도 모르는 아이로 키우는 게 과연 아이를 위해 옳은 교육일까요. 유럽에선 학교에서 요리하기는 물론, 자전거나 자동차 수리 방법까지 가르친다는 데, 계란 프라이 하나 부치지 못하는 우등생 아이를 볼 때마다 언뜻언뜻 불안해지신 적은 없는지요.

서설이 길었습니다만, 이런 고민을 해본 적 있으신 학부모·교사 분들이라면 공감할만한 신간이 있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팬티 바르게 개는 법』(미나미노 다다하루 지음, 공명 펴냄)과 『엄마의 볼로네즈 소스는 참 쉽다』(레베카 웨스트콧 지음, 씨드북 펴냄)라는 책입니다. 첫번째 책의 저자는 일본인 교사입니다. 영어를 가르치다가 아이들이 수업 중 아무 때나 졸고 무기력해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그가 찾은 원인은 아이들의 흐트러진 생활 습관과 정신력이었고요. 결국 청소년기에 가장 배워야 할 것은 영어가 아닌 생활의 기술이라는 답을 얻은 저자는 일본 최초의 기술가정과 남자 교사가 됩니다. 스스로 일어나기, 밥 짓기, 자신이 지은 밥을 식구에게 대접하기, 부모님과 장보기, 용돈 기입장 쓰기 등 삶의 기본적인 기술들을 가르쳐나갑니다. 저자가 온갖 일을 부모에게 떠맡기고 책상 앞에서 툴툴대는 아이보다, 자기가 입을 팬티 한장이라도 스스로 개킬 줄 아는 아이가 행복에 훨씬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엄마의 볼로네즈 소스는 참 쉽다』는 엄마의 죽음을 앞둔 11살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운동화,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환한 웃음으로 올리비아를 따뜻하게 보살펴주던 엄마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절대 안된다던 귀뚫는 일을 허락하지 않나, 엄마의 특제 볼로네즈 소스 만드는 방법을 꼼꼼하게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올리비아가 평소와 다른 엄마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눈치 채기도 전에 엄마는 입원을 합니다. 암으로 인해 가족의 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도 듣게 됩니다. 올리비아는 마냥 울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씩씩하고 밝은 성격이 있고, 엄마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는 볼로네스 소스의 비법까지 터득했으니까요.

엄마의 죽음 후에도 귀걸이를 찰랑거리며 볼로네즈 소스를 젓는 올리비아의 모습. 적어도 가정교육만은 이런 회복력과 밝은 마음을 키워주는 데 집중하면 어떨까요.

※'학창시절'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에게 도움이 될만한 교육 정보, 교육과 관련있는 책이나 영화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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