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이라도 부정하면 불복종하는 용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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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주말에 있었던 프로야구의 시즌오픈잔치는 매우 호화로왔다. 한시간반에 걸친 그 개막식에는 국교생들까지 매스게임에 동원되고, 어느 여학교는 음악밴드까지 내보냈다. 그것은 프로야구의 위력을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아무리 인기가 있다해도, 또 그것이 아무리 국민의 스포츠열을 돋워 간접적으로나마 국민의 체력향상에 도움이 된다하더라도 결국은 직업스포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비좁은 소견인지는 몰라도 버젓이 학교 이름을 내걸고 학생들이 들러리로 참가한다는 것은 교육의 자새로 보나 학교의 품위로 보나 조금도 반가운 일은 아니다.
만약에 프로야구가 상관없다면 프로축구도 좋을것이며 프로권투의 세계타이튤전에도 학생이 동윈되어도 무방하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본것은 나뿐인가 보다. 교육위원회도 그후 아무말이 없었고 만사에 까다로운 매스컴중에 어느 한곳도 이를 탓하지 않고 넘어갔다. 역시 나만이 소견 쫍은 것인가. 교육위원회측은 그런것은 학교의 「자율」 에 속하는 일이라며 발뺌을 하고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규제와 훈련에 묶여오던 교장윤 모처럼의「자율」 을 한것 누리기에 바빠서 미처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여학생들을 프로야구전개막식에 내보내는게 학교의 품위와 관계되는지의 여부를 미처 가려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학생들이 학교의 이름을 내걸고 나간게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자격으로 나간 것이라면 얘기는 크게 달라진다. 만약에 또 학생들이 자진해서 참가하겠다하여 이를 학교측이 승인한것이라해도 얘기는 좀 달라진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을것이다. 그저 학교의 품위 보다도 학교 PR을 더 소중히 여긴 교장에 의해 동윈됐을뿐이었을 것이다.그만한「자율」이 학생들에게는 없는것이다.
「자율」이란 스스로의 책임아래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그 참뜻이다.
이런 자율의 능력을 키우는 것처럼 중요한 교육도 없다. 또 그것은 어릴때부터의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만 키워질수 있는 것이다. 그런 교육이 우리네 학교에서는 없다. 그저「착한 어린이」만을 키우려든다. 좀지나치게 표현하면 자율신경을 마비시키는 교육으로 끝내고 있다.
그 한 예가 최근에 한국 최초의 치어걸이라하여 화젯거리가 된 여대생들의 경우다.
학교의 품위룰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뒤늦게 그녀들의 출연을 금지시킨 대학측의 처사가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제쳐놓고 우선 그녀들 자신자기녜의 행동이 대학의 품위를 떨어뜨리게 될것인가 아닌가를 한번이라드 생각해 봤을까 하는게 궁금해진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그녀들이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대학이 그녀들을 대신해서 생각해주는 것이며, 그녀들은 그저 대학의 경정을 따르기만하면 됐다. 우리나라에선 자율신경을 쓸 필요가 없도록 모든게 자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더우기 「자율」의 자유는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책임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기 위해서도「자율」보다는 복종을 택하게 된다. 필연적으로「자율」의 범위는 줄어들지 않을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부작용은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요새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부정재매인사건만해도 그렇다. 만약에 부정이 분명해지면 관련사원들은 법의 처단을 받을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매우 딱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저 회사를 위해 일했을 뿐이며 사장의 지시룰 따랐을 뿐이다. 회사가 토지를 부정재매입한다고 그들 개인으로서는 아무 득될게 없다. 오직 있다면 회사에 대한 충성이 입증된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모두 모범사원이었을 것이다. 어릴때도 그들은 모두 착한 어린이요, 선생님의 귀염둥이 모범생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불복종을 모르며 자랐다. 사장의 영을 어기고, 사침을 어긴다는 것은 충실한 사원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
「자율」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들에게는 복종해야할 것과 복종해서는 안될 것과를 가릴만한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제1차 대전매까지 오스트리아의 최고군인등장은 마리아 테례사동장이라는것이었다.
명령복종이란 어느 나라군인에게나 절대적이다. 그러나 전쟁중에는 명령을 어기지 않으면 안될때가 있다.
가령 현위치를 고수하라는 명령을 사령부로부터 받았다하자. 그것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사령부의 탁상작전에 의한 것일수도 있다. 이때 지형도 나쁜곳을 사수하려다 전멸하느니 퇴각해가면서 적군을 괴롭히다 재탈환하는쪽이 승산이 있다고 본 일선지휘관이 사령부의 명령을 고의로 어긴끝에 대승을 거둔다.
마리아 테레사동장은 이런 명령불복종의 군인에게 주는 열장이었다. 만약에 그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때에는 물론 그는 군법회의에서 처단된다. 이런 위험을 각오하고 「자율적」인 판단아래 항명을 한다는 것은 여간 용감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비록 자기 판단이 옳다하더라도 뒤탈이 두려워서 그냥 명령을 따르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다.
이번 사건의 관련 사원들도 이런 보통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자기 개인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 그리고 법이 보장하려는 공고이 일치하고 있을때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그대로 사익과 공익을 아울러 도모하는 일이된다. 이런 때에는 자율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드 없이 그저 사명을 따르기만하면 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1차적인 책임은 사익과 공익을 어긋나게 만든회사 자체에 있다. 큰눈으로 볼때 뭣이 참으로 사익이 되는지, 토지재매입이 과연 범법이 되는지를 만년사윈들이 가려내야했다는 것은 그다음번 문제다. 그만한 것을 가려낼만한 능력이 없었다면 그들이 당장에 눈에 뵈는 사익만을 쫒았다해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다. 법은 언제나 벌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설사 가려낼 능력이 있었다해도 자율적인 판딘에 따라 실직을 각오하면서까지 감히 사명을 어길만한 사윈이 되기도 어렵다. 이런말을 하는 나부터가 자율신경을 잃고있는 것인지도모른다. 맹목적인 복종이 가장 비겁한 행위일수 있다는 사실을 덮어두고 있는것부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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